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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틂씨 Feb 09. 2022

인생은 원래 선택의 연속이지

그거 좀 그만하고 싶다, 근데





한국에 갈까 싶어 비행기 티켓을 검색했다.

작년과 재작년, 한창 코로나로 길이 막혔던 시절에 비하면 보통의 가격대로 돌아왔다. 출발지 암스테르담, 도착지 인천, 라운드 트립, 그리고 날짜를 지정해야 한다. 언제 가지.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앞 뒤 서너 일간의 티켓 가격도 한 번에 나와서 검색을 하기 한결 편해졌지만, 어쨌든 정확한 날짜를 입력해야 한다.


그 날짜를 지정하기 위해서 뭘 고려해야 하더라.

낼 수 있는 휴가의 기간. 2주 혹은 3주? 그리고 해외 입국자의 자가격리 기간. 10일이었다가 최근에 7일로 줄었다. 그래, 그 정도면 타협해볼 만하다. 자가격리 14일 일 때에는 엄두도 못 냈다. 부모님 집에 14일간 갇혀있으라니, 무슨 일이야 그게. 그리고 또, 생리 예정일? 언제더라. 앞 뒤로 계산을 맞추어 본다. 날씨? 뭐 한 겨울은 지나갔으니까. 놓치고 있는 행사는 없던가.


그런데 나는 뜬금없이 왜 가려는 거지. 아니, 오래 못 갔잖아. 그리고 갈 수 있는 상황이 되기도 했고. 코로나 터진 지가 언제인데 그동안 발도 못 디뎌 봤잖아.




그래서, 언제 가려고. 3월? 4월? 언제가 좋겠어? 누가 대답 좀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변수가 너무 많아. 유럽은 이미 지나간 오미크론 피크가 한국에는 언제 올까. 비행기 티켓을 예약해놓고 갈 때까지 코로나에 걸리지 않을 수 있을까. 한국에서는 또 괜찮을까. 무사히 돌아올 수 있으려나. 자가 격리기간이 늘어나거나 갑자기 둘 중 어느 한 나라라도 락다운에 들어가면 어쩌지. 가서 뭘 하려고. 왜. 뭐. 아우!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매 순간 선택해야 해. 그게 너무 괴로워. 선택에 책임지는 게 싫어서 회피하는 걸까. 자꾸 머리를 굴리게 된다. 그렇다고 꼭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매 순간, 지금 집 밖을 나서면서도 그렇다. 점심을 먹고 나갈까, 나가서 사 먹을까. 나가는 길에 오늘 열린 재래시장에서 장을 볼까, 그냥 지나가고 나중에 마트에 갈까. 장을 보려면 뭘 사지. 계란, 계란 필요한 거 말고는, 이번 주에 저녁 해 먹을 재료를 사면 되는데.. 뭘 해 먹지? 먹고 싶은 게 없을 때, 뭘 사야 할지 모르겠다. 뭔가 해 먹기는 해야 할 텐데. 어쨌든 이 생각을 마치기 전에 집 밖에 나서는 편이 좋겠지. 기분전환을 위해 근처에 중고 생활용품점 구경이라도 할까. 1유로짜리 예쁜 접시 같은 걸 사면 기분이 조금 좋아질걸. 그러는 사이 내 발이 익숙한 마켓에 도달했다. 일주일에 두 번 열리는 마켓은 왠지 열리면 꼭 들러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된다. 금세 기름 냄새를 맡고서 생각한다. 저 튀김을 사 먹을까, 말까. 화분들이 싸네. 이제 곧 봄이 오면 새 화분도 하나 사고 분갈이를 해 볼까. 와, 나 진짜 산만해.




자주, 선택을 하려다 만다. 생각을 하다 멈춰버린다. 아까 날짜를 정해서 비행기 티켓 값을 확인해놓고도 창을 다시 닫아 버렸다. 티켓을 한 달 전에 미리 끊어 두는 건 좋은 선택일까. 선택을 미루면 티켓 값이 오르려나. 오미크론은 한 달 후에 네덜란드와 한국, 그리고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문제가 생기면 환불이 될까. 환불되는 티켓은 돈을 더 줘야 한다. 얼마까지 더 낼 수 있지. 문제가 생기면 미리 빼 둔 휴가는 어떻게 해. 지금 결정하기엔 뭔가 생각해야 할 리스크와 변수가 너무 많다. 머리가 복잡해지면서 그걸 처리하기 귀찮아졌다. 에이, 다음에 생각하자. 다음에, 언제? 지금이 그 다음이야. 결정을 회피하고 뒷걸음질을 치다가 결국 똥 같은 걸 밟는 일을, 좀 피할 수는 없겠니? 선택지는 빤한데, 왜 생각을 하다가 마는 거야. 대체. 결정을 했어야지. 내가 나를 혼내고 어르고 달래고 그러다 또 멈춘다. 


생각에는 분명히 육체노동 이상의 에너지가 소비되는 것이 틀림없다. 자주 지쳐. 예측할 수 없는 삶이 주는 피로가 너무 오래도록 쌓였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세상에서는 나도 뭘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한 치 앞을 모르는 미천한 인간에게 세상은 너무 많은 선택지를 준다. 정답은 없어, 선택을 최선으로 만드는 건 내 몫이다. 알면서도 오늘 선택 하나를 결국 뒤로 미루고 말았다. 어쩌려고 그러니 너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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