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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틂씨 Aug 08. 2021

안쪽으로 걷는 아이





- 어깨 펴고, 고개 들고, 당당하게 걸어. 발을 약간 바깥쪽으로 걷는다, 생각하고! 똑-바로 걸어봐. 어째 우리 딸은 안짱 걸음을 할까. 엄마가 뭘 못 해줬나, 밥도 잘 챙겨 먹인 것 같은데….

- 아, 엄마 탓 아니라고오-! 알아서 할 거야, 잔소리하지 마.


엄마와 함께 걸을 때면 어김없이 잔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약간 안짱 걸음으로 걸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툴툴대며 입을 막았다. 매번 같은 말로 지적하는 것도 별로지만,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닌데 어쩌란 건가 싶어 진다. 내 발은 이미 뇌로 생각하기 전에 그렇게 걷고 있는 걸.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제일 듣기 싫은 부분은 아무래도 ‘엄마가 뭘 잘 못해줘서 그런 가아’ 하는 부분이다. 괜한 죄책감이나 걱정을 돌려서 표현한다는 걸 알아도, 그 말은 정말 듣기에 고역이었다.


- 엄마가 최선을 다 해서 키운 거 알아, 내가 증명해줄게! 그런 소리 좀 하지 마, 쫌.






초등학교 때부터인가, 아니면 그보다 어릴 때 일까. 언젠가부터 내 신발의 안쪽, 발볼 근처에는 늘 쓸린 자국이 났다. 신발을 빨아주던 엄마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아이의 걸음을 관찰해보니 영락없는 안짱걸음이더란다. 그 이후로 엄마와 함께 외출을 할 때면, 빼놓지 않고 잔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 보아도, 약간은 안쪽으로 쏠린 걸음걸이는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시간이 오래 지나고 나서는, 인간의 소심함과 내적 지향성은 이렇게도 드러나는 걸까, 생각했을 뿐이다. (물론, 과학적 근거는 없습니다)


열 살 쯤인가, 검은색의 에나맬 구두를 사달라고 조른 적이 있다. 시장을 지나다 동네 신발가게 앞에서 본, 리본에 큐빅까지 박힌 그 구두를 꼭 신고 싶었다. 엄마는 이런 구두는 딱딱해서 발이 금세 아플 거라고, 예쁘기만 하지 불편해서 얼마 신지도 못할 거라고 나를 말렸지만, 열 살은 그런 말에 수긍하는 나이가 아니니까. 그걸 사고 온통 뿌듯했던 마음은 딱 하루가 갔다. 다음 날 학교에 신고 갔는데, 역시나 엄마의 말대로 발이 아팠다. 그리고 반짝이던 에나멜 광택에는 금세 스크레치가 나서 헌 구두가 되었다. 엄마 말이 맞았다.


안짱 걸음으로 걸으면 사실 좀 소심해 보인다. 하지만 엄마도 나도 보기에 좋지 않을 뿐이지, 큰 기능장애라고 까지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다. 어린이였던 나는 운동장 조회에 설 때도, 달리기를 할 때도, 하굣길에 신발주머니를 들고 집에 돌아올 때도, 발을 의식적으로 똑바로 돌려보려고 노력했다. 새 신발을 살 때마다 안쪽에 스크래치가 생기는 게 싫었고, 그걸 보면 엄마가 또 잔소리를 할 테니까.


- 무릎을 붙이고, 발을 살짝 바깥쪽으로 향한다 생각하고, 자아...

걸을 때마다 엄마 목소리가 매번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원래 걸음이란 기본적으로 무의식적인 몸의 움직임이다. (비유가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중독된 뭔가를 끊는 건 그냥 영원히 참는 거라는 말처럼, 이미 몸에 밴 어떤 습관을 의지로 조절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똑바로 걷는 건 의식할 때 순간뿐이었다. 아마도 의식하지 못한 많은 순간, 나의 발은 습관적으로, 몸과 근육에 배어있는 대로, 다시 살짝 안쪽을 향한 채로 걸었을 것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애쓰지 않은 순간 원래의 나로 돌아왔다. 도무지 이길 수 없는 게임에 빠져든 기분이었다.

모든 걸음을 걸을 때마다 의식적으로 딛을 순 없었다. 하지만 엄마는 이것이 습관과 의지의 문제라고 굳게 믿었던 것 같다. 의식하면 나아질 수 있는 거라고. 운동을 하면 나아지는 근육처럼.



사실 엄마는 늘 당신의 아들과 딸이 조금만 뭐가 부족해도, 자신의 탓이 아닐까를 걱정했다. 당신이 뭔가 부족했던 건 아닐까, 남들만큼 뒷바라지를 못해준 건 아닐까, 당신이 뭔가를 놓친 건 없나.


이해한다. 그때의 엄마에게는 인터넷도, 오은영 박사님도 없었으니까. 엄마의 엄마는 대한민국 지도의 어느 끝에 가까운 동네에 살아서 일 년에 겨우 두어 번 볼 수 있었고, 형제자매들은 전국 팔도에 흩어져 각자 사느라 바빴다. 핵가족 세대의 첫 주자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두 명의 연년생 남매를 최선을 다해 키우고자 노력했으나, 독박 육아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정답이 없는 세계니까. 엄마는 그래서 스스로를 자주 의심하고, 자식을 우려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아무리 동생과 내가 엄마의 사랑과 최선을 먹고 잘 자랐다고, 남들보다 못해준 건 하나도 없다고 말해도, 엄마에겐 언발에 오줌누기처럼 들렸는지도 모른다. 그랬어? 하고 넘어가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 한 구석이 찝찝한 상태.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 아무도 객관적으로 확인시켜 줄 수 없는 세계. 그것은 육아에 참여하지 않은 부친과는 상반된 태도였다. 그는 언제나, 내가 이렇게 너희를 먹여 살리느라 고생을 하는데, 자신을 적절하게 공경하고 가장에 대한 예우를 다 하지 않는지에 대해 불평할 뿐이었으니까.






그런데 최근에야 찾아본 의학적 지식에 의하면, 안짱 걸음은 똑바로 걸으라고 아무리 말해도 쉽게 고쳐질 수 있는 움직임이 아니란다. (신경외과 의사의 개인 유튜브를 통한 내용이나, 신뢰도를 얼만큼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억지로 걷는 정상 보행은 득 보다 실이 많다고 했다. 걷는 것은 의식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우선적으로 근육이나 뼈의 안정성을 먼저 확보하고 나서야, 의식적인 수정을 더할 수 있는 거라고 했다.


이럴 수가. 나는 평생을, 늘, 걷기를 시작할 때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주문처럼, 생각했는데.

- 무릎을 붙이고, 발을 살짝 바깥쪽으로 향한다 생각하고, 자아...

그게 소용없는 일이었다니. 어쩐지 수년이 지나도 고쳐지지 않더라니. 내가 부족해서 생긴 나쁜 습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습관을 의지로 고치지 못하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나에 대해서 지금까지도 잘 못 알고 있는 지식과 확신은 얼마나 많을까. 당연하게 믿어왔던 어떤 것들은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살짝 굽어진 발걸음을 사랑해줄 수는 없어도, 그렇게 걷는 나를 미워하지는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엄마도 몰라서 그랬던 거겠지. 사람들도, 대게는, 몰라서 어떤 일을 저지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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