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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틂씨 Jun 02. 2021

영원히 젊기만 할 줄 알았지

그래서 <좋은생각>처럼 살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좋은생각>이라는 월간지가 있다. 보통 사람들의 따뜻하고 소박한 글을 모아둔, 하지만 판형도 아주 작고 화려한 사진이나 광고가 많이 들어가지도 않아서 어쩐지 잡지라고 부르기는 어려운 생활밀착형 월간지. 지금도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실물을 본지는 꽤 시간이 지났다.


학교 다닐 때, 어느 날 친구가 좋은 글이 실렸다고 선물을 해 주어서 알게 되었다. 한 번 알고 나니, 공공시설이나 의외의 곳에 종종 비치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인간극장>의 글쓰기 판이랄까. 잘 쓰인 글도, 감동적인 이야기도 종종 있었지만, 그걸 읽는 스무 살의 나는 그 글을 문학으로 여겨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런 글은 ‘에세이'가 아니라 ‘수기'의 느낌에 가깝지 않나, 그 둘의 차이가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좋은생각> 속 세상은 <인간극장>의 다큐나 <여성시대> 속의 라디오 사연처럼,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돌아보면 주변에 있을 법한 인물들의 있을 법한 이야기들. 당연하지, 그것은 픽션이 아니니까. 그때는 그 수기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지루하고, 평범한 삶. 그것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그런 고단함 속에서 아주 작은 기쁨의 순간을 원동력으로 살아가는 삶이 이상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더 커다랗고 절대적인 행복이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았다. 아직 젊으니까, 더 멀리로 나아가서 특별한 삶을 살고야 말겠다고, 그걸 찾겠다고 다짐했다. 그 시절의 내가 내린 오만한 다짐이었다.

 



좋은생각




내가 다른 어른들과 다른 어른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모든 젊은이들의 착각일까.


내 삶의 미래는 그것보다는 더 밝게 빛나고 있을 거라 믿었다. 장을 보면서, 버스에서, 시장에서, 아이들과의 일상에서 감동과 기쁨을 찾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게 내 기쁨의 전부 일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판타지에 나올 법한 환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지리한 일상이 내게 올 날의 전부라고 한정 짓고 싶지 않았다. 가끔 <좋은생각>을 읽다가 어떤 글이 마음에 들어도 내색하지 않았다. 트렌디한 잡지가 아니라 촌스러운 수기 모음집을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걸 좋아하면 어쩐지 시시하게 느껴지니까, 내 삶이.  



지금은 이제 더 이상 그런 착각에 빠져있지 않다. 사람들이 보내던 라디오 사연이나 종이에 쓰이던 수필들은 일정 부분 웹으로 많이 옮겨져 왔고, 사람들의 경험은 비슷해 보여도 또 다 달라서 공감과 감동의 포인트도 전부 다르다. 바뀐 것이 있다면 그것을 바라보는 나, 나의 시선이다. 이야기 속 일상이 소중하다. 예전과는 달리, 나는 이제 인생에 더 빛나고 신나는 시간만이 존재할 거라는 불확실한 희망을 버렸다. 나이가 들수록 삶이 재미없어진다는 말이 아니라, 순간의 소중함을 안고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고 해야겠다. 여전히 안정되지 못한 삶을 산다고 해서, 청춘의 패기를 손에 쥔 사람이라 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제대로 인정하게 되었다. 


사십 대인 성시경은 이제 '나이 든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해도 스무살의 트렌디함을 가질 수는 없다고 고백했다. 그보다는 자신이 쌓아온 이십 년의 노하우를 어떻게 올드하지 않게 풀어낼지 고민한다고. 그에게 최전성기라는 것이 있었던 것 처럼, 나의 지난 시간에 그런 때가 있었을까. 성공한 셀럽에 비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겐 오래도록 쌓은 비기 같은 것은 없다. 인생의 전성기라 할 만한 것을 갖지 못하고 이대로 다음 세대로 넘어가게 된다고 생각하면 솔직히 현자타임을 갖게 된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나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답게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일까. 나를 어떤 기준에 맞추어 뜯어고치지 않고서도, 나만 보여줄 수 있는 가치는 뭘까.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끝이 없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인데, 나는 아직도 헤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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