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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틂씨 Jul 10. 2019

한 발 짝 내딛는 용기에 대하여

[쓰기 9+10일]



얕봤다. 하루에 20분이라는 시간. 

매일매일을 놓치지 않고 꾸준히 한다는 것의 무게를 그동안 간과했다. 그렇게 견고하게 짜여진 세계에서 벗어난지 꽤 오래되었기 때문일까. 20분이라는 시간 자체보다는 매일매일이라는 것에 어려움의 방점이 찍힌다. 글감이 늘 솟아나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아무 일 없는 하루가 지나가기도 하니까. 결국 지난 기억과 생각들을 끄집어내게 된다. 하고 싶은 말이 많던 시절이 분명 있었으니까. 






하고 싶은 것을 도무지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몰라서, 꾸역꾸역 타협을 하고 다른 길을 돌고 돌아 다시 여기에 서 있다. 안 될 거라 생각했던 일들을 한 적도 있지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일들이 실패하기도 했다. 아직도 여기가 어디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몰라 밤마다 끙끙 헤맨다.  



힐링이 유행일 땐, 사람들이 힐링을 했다. 요가를 하고 욜로를 외치며 여행을 떠났다. 

퇴사가 유행일 땐, 사람들이 퇴사를 하고 글을 썼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그만두는 것도 용기라서 그걸 남들이 함부로 탓할 수는 없는 거라고 했다. 그 말은 분명 일리가 있는데(나도 그랬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하는 퇴사가 무엇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퇴사 그 이후의 삶을 사람들은 어떻게 감당했는지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았다. 아직은 다른 회사로 돌아가거나 어떻게든 살아가느라 그에 대해 적을 여유가 부족한 거겠지.

한동안은 제가 우울해요, 하지만 괜찮습니다가 유행이기도 했다. 십 년 전 만해도 심리 상담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가까운 사람을 제외하고는 언급하기 어려웠다. 사람들이 모난 편견으로 쳐다볼까봐. 하지만 이제는 우울하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다는 저자의 뒤를 이어 많은 사람들이 고백을 한다. 저도 우울해요, 하지만 그럭저럭 삶을 살아간답니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 같은 거니까요.

때로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한다. 엄마, 고생했어요 하는 주로 딸의 시점에서 하는 이야기와 싱글맘/워킹맘/며느리의 시선으로 결혼 생활과 이 사회에 존재하는 여성과 엄마에 관한 편견이 어떠한 것인지를 적는 글이 늘어났다. 좋다.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인가가 트렌드가 되고, 그것이 서로의 힘든 부분에 대한 커밍아웃, 그리고 공유가 되어 편견을 무너뜨리고 사람들에게 관대 해지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질 때, 비슷한 것들을 반복해서 보는 것에 대한 피로도도 분명히 있다. 교보 문고 베스트셀러에 깔린 모든 책들이 비슷하다고 느꼈을 때처럼. 어떤 주제나 이야기에 영향을 받았다면 그보다 더 나은, 혹은 더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주제라도 비슷하거나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은 글을 쓰는 사람들을 보면 그래서 기쁘다.



그렇게 자꾸 남들을 살피다 보면,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이미 지나간 것 같고, 이걸 하려고 하니 이미 누군가 했고, 저건 내가 더 잘할 자신이 없어서, 온갖 이유들로 내가 하(려)던 걸 그만두게 된다. 그 자리에, 어, 어, 어? 하며 그저 서 있게 된다. 확신 없이 어디로 가야 할지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멈춰 서서 서성대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훌쩍 흐르고, 그래서 시간이 흐른 만큼 더 최고의 선택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에 선택이 더 더뎌진다. 이런, 총체적 난국.  



그래서 나 같은 사람에겐 실패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실패해도 죽지 않는다. 누군가는 비웃을.. 수도 있지만,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러니까 주변을 그만 살피고, 어떤 곳이라도 좋으니 한 발짝을 떼고 걷기 시작하면 좋겠다. 그 한 발이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내게는 옆에서 용기를 대신 전해줄, 괜찮다고 응원해줄 사람이 없다. 스스로 그 역할을 해내지 못하면 이 자리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간절한 눈빛으로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소용없다. 아무도, 세상 그 어느 누구도 나의 선택을 대신해줄 수 없으니까. 온전한 나의 힘으로 발을 떼지 못하면 계속 이 자리에 서 있겠지.


아무리 이론적으로 완벽하게 알고 있어도 실제로 행동하는 것과 아닌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직접 해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것들. 시간이 흐를수록 겁이 많아지는 건 사실이지만, 지금이 없다면 다음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바이엘을 틀리면서 연습하지 않으면 피아노를 잘 치게 될 수 없다. 알파벳을 공부하지 않으면 영어를 잘하게 될 리가 없는 것처럼. 그 서투른 과정을 그냥 지름길로/공짜로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다만 대게의 완성된 결과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을 뿐. 

나에게 주어진, 혹은 내가 만들어놓은 삶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 더하거나 빼지 않고 과장하거나 의심하거나 우습게 보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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