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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틂씨 Oct 12. 2020

커다랗고 싱싱한 딸기를 고르는 마음

행복의 어떤 다른 이름





부모님의 동네에는 재래시장이 있었다. 긴 골목을 따라 이어진 시장에는 입구의 약국과 과일 가게, 빵 가게를 시작으로 떡집, 쌀집, 떡볶이 집, 반찬가게, 옷 가게, 생선 가게, 건어물 가게, 고깃집과 미용실, 생활용품 가게와 그릇 가게, 죽 집, 분식집과 신발 가게 등 없는 것 없이 길을 메우고 있었다. 대게 비슷한 꽃무늬 일바지와 비슷하게 곱슬거리는 아줌마 파마를 한 아주머니/할머니, 가끔은 아저씨들이 각자의 가게를 지키고 앉아 장사를 하셨다. 그 거리의 비슷한 풍경을 오래도록 보아 왔다.



엄마는 과일을 좋아해서, 우리 가족은 언제나 밥을 먹고 나면 후식으로 과일을 먹었다. 제철에 나는 과일 위주로. 봄부터 여름에는 토마토와 수박, 참외, 복숭아, 가을에는 무화과, 사과, 배, 감, 겨울에는 귤과 한라봉, 그리고 하우스 딸기까지. 그중 왜인지 모르게 타국에서 가장 생각나는 것은 딸기다. 좋아하는 과일 중 하나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 동네 딸기는 한국의 하우스 딸기만큼 크고 실하고 맛있지가 않다. 여기서 주로 먹는 과일은 청포도와 블루베리, 사과, 납작 복숭아 같은, 먹기 편하고 흔해서 심혈을 기울여 고르지 않아도 대게 맛이 있는 것들. 하지만 딸기는 다르다. 알도 훨씬 잘고, 당도가 떨어지는 딸기가 많다. 종종 한국 딸기가 그립다.


내가 딸기가 먹고 싶다고 말할 때면, 엄마는 시장에서 제일 싱싱하고 좋은, 주로 흰 스티로폼 한 박스에 (당시에) 만 원쯤 하는 커다랗고 싱싱한 딸기를 사 와 내(혹은 가족의) 입에 넣어주곤 했다. 나는 밥값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입맛만 까탈스러워서, 싱싱해도 신 딸기나 신선도가 덜 한 흐물한 딸기를 사 오면 툴툴댔다. 반면에 엄마는 종종 자식들이 저녁을 먹으러 들어오지 않는 날에는 떨이에 몇 바구니를 주는 잘잘한 쨈 용 딸기를 사 왔다. 그런 딸기를 부엌에서 발견한 날엔 늘 엄마에게 잔소리를 했다.

- 엄마, 그거 얼마 차이 안 나잖아. 우리, 사치는 못해도 맛있는 거 먹으면서 살자. 인생 짧대.

뭘 말해도 그뿐이었다. 엄마는, 그래, 그럴게. 하고 대답하곤 늘 그대로였다.

 

부모님은 양쪽 모두 가난한 시골집의 여러 형제자매 중 하나였다. 똑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가난해서 고등교육을 못 받았다. 지금 부유하지는 않지만 만 원어치 딸기를 못 사 먹을 정도는 아니지 않냐 말해도, 엄마는 그런 돈을 아껴가며 여태껏 살림을 했으니 우리가 그나마 이렇게 살고 있는 거라고 고집을 꺽지 않았다. 그 말은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나는 엄마가 조금은 더 좋은걸 먹고 입었으면, 했다.






칼퇴를 할 수 있는 대신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는 회사에 다녔다.(돈과 시간은 언제나 상관관계가 있다.) 서울에서 경기도까지의 퇴근은 늘 한 시간 반이 걸렸는데, 집에 가기 위해서는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시장 골목을 지나야 한다. 집에 도착할 때쯤이면 이미 저녁 시간이 지나기 때문에 배가 고팠지만, 나는 주로 과일을 샀다. 이미 장은 엄마가 미리 봐 두고 맛있는 것을 해 놓았을 테니까. 필요한 게 있으면 사 오라고 시키라고 말해도 엄마는 나에게 잔심부름조차 시킨 적이 별로 없었다. 너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사와, 늘 그게 전부였다.


엄마는 단감을 좋아하고, 신 맛이 도는 과일을 좋아한다. 시장 중간의 과일 가게에서 감이 싱싱한 날엔 커다란 감을, 딸기가 싱싱한 날엔 크다랗고 싱싱한 딸기를 샀다. 단지 나를 위해서라면 선뜻 손이 가지 않을, 제일 알이 굵고 비싼 종류로. 그리고 굳이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지 않고 벨을 누르고 나선 달려 나와 문을 열어주는 엄마에게 비닐봉지를 내민다. 엄마, 선물! 헤헤.


보통 엄마는 비싼데 뭘 이런 걸 사 오냐, 돈도 없다면서, 싼 것도 많은데 왜 이렇게 비싼 걸 사 오냐, 집에 먹을 거 많은데 뭘 또 사 왔냐 같은 말들을 했지만, 막상 사가면 잘 드셨다. 사람 입맛은 다 똑같다. 비싸고 좋은 과일이 맛도 좋은 법이다. 싼데 좋은 건 없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은 곧 물질의 값어치이고, 특히 시장에서의 그것은 거짓말을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싸다 싶으면 분명 어딘가 남모를 흠이 하나쯤은 있는 것이다. 그저 맛이 없거나.

 



회사 다니던 시절의 나는 행복한 적이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가끔 저녁에 손에 뭔가 사 들고 집에 갈 때면, 그래서 엄마가 잘 먹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면 행복했던 것 같다. 내가 이러려고 돈을 벌지! 하는 마음. (실은 얼마 벌지도 못했지만.) 퇴근길에 치킨을 손에 들고 집에 들어가는 가장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부모님의 집에 얹혀살던 시절, 행복의 7할은 엄마였다. 바깥에서 온갖 풍파에 치여 돌아왔을 때, 엄마가 오늘은 뭐 먹고 싶어, 말만 해, 다 해줄게. 하며 온 힘을 다해 맛있는 것을 만들어 줄 때의 기쁨. 그게 살아가는데 얼마나 큰 힘이었는지. 시장에서 잘 익은 무화과를 보니 무화과를 좋아하던 엄마 생각이 난다. 박스에서도 제일 크고 싱싱한 딸기만 골라 씻어서 꼭지까지 따서 다 큰 자식의 입에 넣어주던 엄마가. 당연한 게 아니었다는 것을, 그때는 잘 몰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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