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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틂씨 Jul 16. 2019

[쓰기 15+16일] 이가 시린 날의 일기

[쓰기 15+16일]




이빨이 시리다.

정확하게는 금으로 충치 치료를 한 어금니와 앞니 일부, 그리고 뭔가 교합을 맞추기 위해 살짝 갈아낸 것 같던 윗니 두 개가 다 시리다. 이제는 하다 하다 이빨 이야기를 쓰다니.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오늘 가장 많이 한 생각은 그거다, 이가 시리다는 것.




한국에 갈 때마다 꼭 하는 일이 치과 검진과 스케일링이다. 이 나라의 의료 서비스는 안 좋다고 불평하기엔 한껏 프로페셔널하지만, 직접 마주하게 되면 왠지 자주 짜증이 나게 되는 시스템으로, 일단 가정의학과에서 모든 진단을 하고, 특별히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때에만 전문의를 마주할 수 있다. 자연주의를 추구하므로 항생제는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쓰지 않으며, 대부분의 간단한 처방은 따뜻한 차 많이 마시고 쉬어라. 가 되겠다. 치과의 경우도 전체 수가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사기를 당하거나 할 일은 없지만, 보통 일반 보험에 치과 진료가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한국보다 비싸고, 섬세한 표현의 경우 언어의 표현력의 문제도 따른다. 만약 이가 시리다고 한다면, 나에겐 It's cold 이외에 그 상황을 더 자세히 표현할 방법이 없다.


십여 년 전 나의 교정을 담당했던 치과에 찾아가 스케일링을 했다. 담당의는 마지막 어금니에 때운 아말감이 깨졌으므로 출국 전에 꼭 치료를 하고 나가야 한다고 했다. -교정 치과에서는 충치 치료를 해주지 않는다.- 별생각 없이 동네 치과에 가서 어쩔 수 없이 금으로 된 인레이로 교체하는 치료를 했다. 세라믹은 깨질 수 있으니 금이 낫다고 의사는 권했다. 또 몇 십만 원이 스르륵 사라졌다. 아, 나는 언제 돈을 벌어 쌓아 두고 곡식 쌓아둔 농부처럼 든든한 마음으로 살아볼 수 있을까. 여튼, 그는 무뚝뚝해서 제대로 된 설명을 잘해주지 않는 편이다. 본을 뜬 형태로 제작을 하는 데에 5일이나 걸린다고 해서, 출국 전 날 겨우 치료를 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치료한 어금니가 뭔가 미세하게 무겁고 먼저 닿는 느낌이 든다. 이것이 정확한 판단인지, 아니면 그저 새로운 물질로 교체했으니 이물감이 드는 것이 당연한지 바로 판단하기 어려웠다. 지켜보고 싶다. 그렇지만 내일이 지나면 나는 더 이상 이곳에 없을 것이다.


결국 다음 날 아침 치과에 재 방문했고, 치료한 이가 왠지 좀 (표현이 이상하지만) 미세하게 무겁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표면이 다른 이에 비해서 더 거친 것 같은데 혹시 더 매끈하게 하지 않아도 음식물이 끼이진 안..(을까요? 생략) 까지 물어보려 했으나, 의사는 내 말을 끊었다. 보기엔 닿는 곳이 없는데 닿는 것 같냐며, 그렇다면 원하는 대로 매끈하게 갈아주겠다고 했다. 교합이 맞지 않는 것 같다며 앞니와 이곳저곳을 약간 더 갈았던 것 같다. 아니, 문제가 있는지 확실히 모르겠으니 미세한 불편감을 확인해달라는 확신 아닌 의문문이었는데, 뭔가 다짜고짜 갈고 보는 느낌이랄까. 물론 치과 의사가 나보다야 전문가이니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만, '네가 원한다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그대로 해주겠다'라는 느낌의 대응이 당황스러웠던 것은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무엇보다 치과는 치료 도중에 입을 벌리고 있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다는 점이 정말 나를 약자로 만드는 것 같다. 갈아서 시리면 어떻게 하지. 실은 며칠 지나면 자연히 적응되는 건데, 괜한 얘기를 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든 걸까. 별 것 아닌 불편감을 호소해서 뭔가를 왕창 갈아낸 건 아닐까. 갈아버린 건 다시 붙일 수도 없잖아?!  


치료의 주의사항은 금이 금속이라 열 전도율이 높아서 몇 주 정도는 이가 시릴 수도 있으니 찬 것을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주쯤이 지난 것 같은데 내 어금니와 앞니의 어느 부분들이 미지근한 물에도 아찔하게 시리다. 그냥 물을 마시려다가도 움찔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나는 이게 무엇의 부작용인지, 아니면 정상적인 반응인지, 차차 적응이 되는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다. 하.. 어차피 행해진 전문 의료인의 행위를 내가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환자에게 좀 더 자세히 앞뒤를 설명해줄 수는 있는 거 아닌가. 하는 불평을 마음속으로 하며 애꿎은 구글에 검색을 해본다. 골드, 인레이, 시림, 치료.. 계속 시리면 어쩌지. 자전거 타고 입을 살짝만 벌려도 바람에 이가 시린 것 같다. 여름인데 입을 꼭 다물고 자전거를 탄다. 벌써 노인이 된 기분이다.




인생의 수많은 순간의 선택이 모여 삶이 된다. 판단하고 선택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매번 이전의 나의 선택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일일이 확인도 불가능하다. 가지 않은 길은 그저 가지 않은 길로서 인생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그때 가지 않은 길에 다시 가 볼 도리는 없다. 전문가의 소견은 언제나 그것으로서 신뢰하자고 마음먹지만, -보통 그것이 최상의 선택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막상 그것이 내 일이 될 때는 노파심이 폭발하여 돌다리를 두드리듯이 묻고 또 묻고, 때로는 의심한다. 특히 의료 행위인 경우, 이해하고 넘어가고 싶다.

이게 다, 설명을 제대로 해주지 않은 의사 탓이다, 흥, 피, 쳇.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뿐이다. 이 악몽 같은 이 시림이 얼마나 가려나. 치과 의사가 갈아낸 내 이빨의 삭제량이 아주 적당한 양의 적절한 치료였기를 바래본다. 오랜만에 한 스케일링 덕분에 괜히 한동안 좀 쎄한 느낌이 나는 거면 좋겠다. 내가 예민한 거여서, 어느새 지나고 보면 별 것 아닌 일로 내 인생에서 모르는 사이 지나가버렸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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