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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틂씨 Jul 19. 2019

[쓰기 19일] 읽기와 쓰기

[쓰기 19일]





책 한 권을 끝까지 읽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대신 종일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폰의 화면에 온 정신을 쏟는다. 한 번은 하루에 몇 시간이나 폰을 들여다보는지를 확인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긴 시간이라 깜짝 놀랬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에 스크린 타임을 지정해두었는데, 엔터테인먼트 한 시간과 소셜 네트워킹 한 시간을 지정해두어도, 자주 오버타임 알람이 울린다. 맙소사, 이걸 어떻게 끊어야 하지. 유튜브에 중독된 아기나 청소년의 이야기가 남의 일이 아니다. 성인인 나부터도 이지경인데.  


예전엔 책을 무척 좋아했다. 그러다 어릴 때 어두운 곳에서 책을 너무 많이 읽어 눈이 급속도로 나빠져서 열 살 때부터 안경을 끼기 시작했다. 읽거나 쓰는 것은 내게는 일종의 도피처 같은 것이라, 늘 바지런히 읽고 썼다. 시간이 나면 도서관에 가서 보고 싶은 책을 열댓 권쯤 뽑아두고 읽어제꼈다. 공부하기가 힘들었던 적은 많지만, 책 읽기가 어려웠던 적은 없다. 공부하러 도서관에 가서 괜히 관련 없는 책들을 잔뜩 읽고선 오늘도 공쳤네, 하는 시간들이 더 많았으니까.



그러나 요즈음은 정말로, 책 한 권을 끝까지 읽기가 힘들다. 한글 책은 그나마 초반에 집중을 하고 나면 그 이후는 수월하게 읽히는데, 영어로 된 책은 방해받지 않고 끝까지 읽게 되는 경우가 드물다.  


이유는 여러가지다. 일단, 언어가 완벽하지 않은 상태라 의미는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지만 100% 이해가 어렵다. 뿌연 안경을 쓰고 길을 찾는 기분이라 늘 어딘가 답답하다. 사전을 찾아야만 할 때도 자주 있어서, 흐름이 금세 깨진다. 폰이나 컴퓨터를 여는 순간, 단어 찾기 이외의 딴 짓을 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오른손잡이인데 왼손으로 글씨 쓰기 연습을 하는 것 같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단지 방향이 반대라는 이유로 익숙하지 않은 것을 다시 능숙한 상태로 끌어올리려니 애가 탄다. 살면서 책읽기에 문제가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영문으로 읽을 때는 같은 상황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또, 읽으면서 글이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어떤 목적을 가진 글인지 금세 파악하기가 어렵다. 나는 문장의 뉘앙스나 톤, 단어나 조사의 선택 같은 것에 예민한 편인데, 그런 섬세한 파악을 하지 못하고 뜻 해석에만 급급하게 된다. 보통 첫 문장으로도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영문의 경우에는 한참을 읽어야 대략적인 흐름 파악이 가능하다. 

그리고 소설이나 에세이는 그래도 쉽게 읽히는 경우가 많지만, 전문 분야의 책은 그렇지 않다. 뭐랄까, 컨셉적인 부분은 사실 한글로 써 두어도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은 경우가 많아서, 그걸 추상적인 해석까지 하려니 힘에 부친다. 그러고 나면 재미가 없어지니 아무래도 몇 장 보다 말게 되고. 



최초로 완독을 끝낸 영어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여행 갔을 때 덴마크의 어느 서점에서 산, 영어로 쓰인 일본 소설 <If Cats Disappeared From The World>였다. 신기하게도 중국이나 일본 등 아시아권의 글이 영어로 번역된 경우 이해가 더 쉬워지는 것 같다. 기본으로 깔린 정서나 문화가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일까. 그리고 무엇보다 표지가 귀엽고, 글줄이 띄엄띄엄 있었다..! 후후. 전문 서적만 읽다가 오랜만에 소설을 읽으니 술술 읽히는 기분. 역시, 너무 어렵지 않아야 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재미도 쉽게 찾게 된다. 



짧은 시간동안 쓸만한 그날의 단상이 잘 생각 나지 않아, 지난 이틀을 그냥 보냈다. 그 시간을 비워 둔 채 19일의 글을 쓴다. 내게는 넘버링의 빈칸을 채우는 것보다 함께 매거진을 쓰는 다른 분들과 발을 맞춰가는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늘의 마음은 오늘의 날짜에 남기고 싶기도 하고. 처음 매거진에 참여할 때의 가벼운 마음으로 계속 쓰고 싶다. 이십 분은 언제나 마음을 먹으면 낼 수 있는 시간이고, 그래서 부담을 갖지 않고 쓰는 것이 참여의 목적이었으니까. 이제 반환점을 돌았으니, 나머지는 조금 더 수월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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