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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틂씨 Jul 20. 2019

[쓰기 20일] 그날의 공기

[쓰기 20일]




예전에 영화 <김종욱 찾기>에서 공유가 이런 얘길 한 적이 있다.

그곳의 공기, 하늘의 색깔, 사람들의 모습, 도대체 그런 게 뭐길래 십 년을 잊질 못하는 거냐고.

인도 여행을 갔다가 만난 김종욱을 잊지 못하는 임수정에게 불평하며 하던 말이었다. 


그러게, 그게 뭐라고. 


그런데, 정말로 그렇다.  

특히 여행 다니던 시절의 경험들은 더 그렇지만, 일상에서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그날의 공기가 분명히 있다. 



더운 여름날 저녁 어스무레 해가 질 무렵 바람이 조금이라도 시원하게 불어올라 치면, 그 시절의 단짝과 슬리퍼를 신고 손 붙잡고 근처 마트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누어 먹으며 동네를 산책하던 시간이 떠오른다. 뭐랄까 한국의 여름은 분명 쾌적한 날씨는 아니지만, 어떤 계절의 공기를 떠올리는 데에는 그만큼 선명한 특징을 가진 시간도 없달까. 


오늘처럼 아침부터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비 오는 모습도 늘 다르지만- 캐나다에 살던 시절이 생각난다. 캐나다의 서쪽은 동쪽과 달리 온화한 해양성 기후인데 덕분에 겨울에 비가 많이 내렸다. 스키장은 비가 오면 그날은 망한 거라서, 멍하니 직원 숙소에서 창 밖의 비 오는 풍경만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뭘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지금과 별다르지 않은 고민을 많이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참 어렸는데. 물론 당시엔 스스로 엄청 나이 먹었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지금도 언젠가 미래의 나에게는 가장 젊을 날이겠지. 왜 지나가고서야 깨닫게 될까. 지금 알게 된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라는 말은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이 아닐까.  


날씨가 바뀌는 것을 가장 순간순간 느끼던 때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던 시간이었다. 매일매일 아침 일곱 시쯤 일어나서 그저 걷는 삶. 다른 생각 없이 정해진 방향대로 걸으면 되던 시간. 하루하루 공기가 다르고 빛이 다르고 바람의 결의 달라서, 그것을 느끼느라 굳이 귀에 이어폰을 꽂지 않아도 심심하지 않던 날들. 



오늘의 공기도 적어두면 언젠가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나겠지. 그래서 자꾸 적으려고 하는 것 같다. 

그때 그 시간을 잊지 않고 싶어서, 붙잡아두려고. 익숙해져 버려서 지금 이렇게 별 것 아닌 일상을 보내는 순간도 언젠가 분명히 그리울 것을 안다. 그러니까, 더 신나게 사는 게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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