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 23일]
잠을 잘 자는 편이다. 침대에 누워 불을 끄고 나면 몇 분이 지났는지도 모르게 금세 잠이 든다.
반면 꿈은 아주 가끔 꾸는데, 행복한 꿈을 꾼 적이 별로 없어서 장르는 주로 스릴러나 공포에 가깝다.
어느 밤, 건물의 대강당에서 강연 같은 것을 위해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나는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동료와 함께 있었는데, 남들 모르게 구석진 기계실 같은 곳으로 동료와 함께 도망치고 있었다. 누군가가 그 강당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학살할 것이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것 같았다. 숨어있던 우리는 다행히 살아남았는데, 강당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피와 붉은색이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대학살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마음에 사무쳤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 느낌이 얼마나 생생했는지, 그 밤 내내 나는 그 꿈을 꾸고 있었던 것 같다. 그다음 날 오후,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제는 꿈에서 어느 오래된 성곽의 한쪽, 거대한 아치 모양의 성벽이 무너졌다. 물론 그 밑에는 전쟁터의 피난행렬처럼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잔뜩 갇혀 있었고, 그 사이에는 나도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을 친구와 함께 있었다. 성벽이 무너지면서 절반 정도의 사람이 사망했고, 나는 나머지 절반의 사람들에 섞여 -그 절반이 시작하는 라인에 내가 있었다- 살아났다. 지진이었던가. 무너진 성벽 터를 벗어나자마자 시야에 들어온 것은 넓게 퍼진 난민 캠프 사이트였다. 내가 아는 선생님의 아들을 잃었다는 소식과 또 다른 선생님의 부인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소식을 비슷한 시점에 들었던 것 같다. 우리는 포옹으로 서로를 위로했다. 친구와 함께 뭔가 얻을 수 있는 게 없나 싶어 캠프 곳곳을 뛰어다녔다. 막 저녁시간이 되어 철거하는 텐트 중에 하나에는 어느 학교의 졸업전시회가 걸려 있었다. 음?.. 생각나는 대로 적다 보니, 나도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번엔 또 뭐지, 왜지, 하는 마음에 어딘가 찜찜하다.
어릴 때, 꿈의 단골손님은 거대해진 벌레떼였다. 유독 남들보다 더 벌레를 무서워했던 나는, 아주 작은 개미들만 봐도 발을 떼며 화들짝 놀래곤 했었고, 내가 내지르는 소리 덕분에 엄마는 더 자주 놀래야 했다. 밤엔 이불을 목 끝까지 덮고 나머지 세 면을 발과 손으로 번데기처럼 꽁꽁 싸매곤 했는데, 그러면 왠지 이불이 방어막이 되어 벌레가 내 잠자리를 침범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었달까. 그래도 여전히 꿈에서는 거대해진 개미나 바퀴벌레 따위가 떼로 몰려들어 나를 쫓아왔다. 꿈속에서 밤새 뛰고 또 뛰었다.
꿈은 사람의 무의식에 영향을 받는다고 하던데, 나는 뭐가 그렇게 두려워서 늘 쫓기는 꿈을 꾸는 걸까. 좋은 꿈도 아닌데 열심히 기억을 더듬어 적고 있는 나도 참 별스럽지만, 오늘의 쓰기는 이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