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라고 하면 캥거루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가 생각난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은 호주가 우리의 실내디자인에 무슨 영감을 줄 수 있겠냐고 의문을 가진다. 이번에 답사를 따라왔던 제자가 근무하는 사무실의 상사도 ‘호주에 뭐 볼 게 있어서 가냐’고 말했다고 한다.
나 역시 2006년에 정부 용역 때문에 가게 되었는데, 처음 호주에 도착한 브리즈번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면서 본 보라색 자카란다의 꽃이 아름다웠던, 이국적인 풍경으로 이곳이 유럽이나 미국이 아니란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해주었지만, 디자인적인 교훈을 그렇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나마 그때 혼자였지만 이왕이면 공간들을 제대로 보겠다는 일념으로 프로세스 SD 등 외국 잡지에 나온 호주 현대건축에 대한 정보를 제본해서 두 권으로 만들어 갔기에 그 속살을 맛볼 수가 있었다.
석·박사생들과 같이 한 이번 답사에서는 호주 최초의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글렌 머컷의 건축물과 시드니와 멜버른에 있는 대학교 건축 등을 보고 싶었다. 2006년에도 호주의 브리즈번에 도착한 첫날 브리즈번 교외에 있는 USC 선샤인 코스트 대학을 방문,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교육공간을 돌아본 것이 기억에 강하게 남아 대학의 교육공간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결론을 말하면, 이번 호주 답사에서 방문하였던 대학교 건축물의 공간이 우리의 실내디자인과 건축에 시사하는 점이 많았다. 우선 호주 현대건축의 일반적인 흐름이 친환경적인 접근에 상당히 강하다는 것과 함께 존 워들이라는 건축가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게 된 것이 큰 수확이었다.
존 워들을 알게 된 것은 2006년 호주 답사 후 그 당시 호주 현대건축에 대한 책을 쓸 마음이 있어 몇 권의 책을 구입하면서부터다. 책 거의 마지막 부분에 소개된 그의 건축은 주로 주택과 RMIT(로열 멜버른 공과대학)와 관련한 건축물이었으며 군더더기가 없는 미니멀한 건축이었지만 2층 부분을 캔틸레버(cantilever)로 돌출시킨 역동적인 구성의 주택이 인상적이었다.
그 후 A+U 잡지에 소개된 그의 주택이나 국내 잡지에 나온 건축에 대한 기사 등을 통해서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현재 시드니와 멜버른에 각각 건축사무소를 운영, 90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 건축가로 호주의 건축 명문인 RMIT 학부와 석사를 졸업하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 콕스 앤 카마이클이란 건축사무소에서 근무하고 1986년 존 워들 건축사무소를 설립한 그는 초기에 주택 건축을 중심으로 작업하였다.
그는 창의성에 기반을 둔 친밀한 공간이나 디테일에 중점을 둔 공간으로 주택을 설계하였다. 실제 공간의 형태는 미니멀하지만, 역동적인 형태와 구성이 나타나며 이는 해체적 성향이 농후한 RMIT의 교육 경향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렘 콜하스나 톰 메인 등 전 세계 유명 건축가들을 배출한 AA스쿨이나 SCI-Arc 같은 실험적인 대학의 해체주의 성향이 강한 것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는 인터뷰에서 영향을 받은 건축가와 작품으로 알바 알토와 마이레아 저택이나 렘 콜하스, 카를로 스카르파, 볼레스 윌슨, 일본의 아틀리에 바우와우를 거론하였다. 재료와 디테일에 영향을 받았던 스카르파나 공간에 대한 생각에 영향을 받은 바우와우를 제외하면 알토나 콜하스, 볼레스 윌슨이 공간의 진입이나 구성, 형태에 있어 구성주의에 영향을 받은 역동적이면서 디테일에 관심을 가진 성향이라는 점에서 그의 건축이 지향하는 바를 알 수 있다.
그러면 디자인 측면에서 존 워들의 교육공간이 지향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는 주택이나 다른 대형공간에서 소통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연대를 활성화하는 공용공간을 추구하고 있음을 자주 언급하였다. 현대에 들어와서 많은 디자이너가 소통-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 여러 차례 거론하고 있다.
멤피스의 에토레 솟싸스나 수퍼 포테이토의 스기모토 타카시는 디자인은 소통-커뮤니케이션이라고 주장하였다. 물론 두 사람이 말하는 소통의 의미는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현대 디자인의 키워드 중 하나가 공간에서의 소통인 것은 명백하다. 특히 크리에이티브 오피스에서 우연한 만남을 유발하는 소통을 통해 창의적인 발상에 이르게 한다는 것과도 연관된다. 그리고 소통은 우연한 만남만이 아니라 그 만남을 지속하게 하는 장소적 의미도 중요한 것이다. 근대는 공간-스페이스를 디자인하였고 현대는 장소-플레이스를 디자인한다는 말처럼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밀한 분위기를 한 장소적 성격의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 실제로 그의 교육공간은 앞서 언급한 것들을 어떤 방식으로 실현하고 있나를 살펴보자. 그의 교육공간 중 실제로 답사한 것은 멜버른에 위치한 멜버른 디자인 대학(2014)과 모나쉬 대학(Monash University) 학습지원센터(2018)로 두 건축물은 공통의 특징이 있으며 멜버른에서 시도한 것을 모나쉬에서 더 발전시켰다. 지면 관계상 모나쉬 대학 학습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소개를 하면서 멜버른 디자인대학과의 공통적인 특징을 부연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모나쉬 대학은 빅토리아주에서 멜버른 대학과 쌍벽을 이루는 명문대로 국제적인 대학을 지향한다. 자유로운 커리큘럼이 강점이며 여러 학부를 넘나드는 복수전공 선택을 통해 학생 개인의 특별한 미래를 설계한다는 것으로 이런 특성은 학습지원센터의 공간에서도 나타난다.
모나쉬 대학 클레이튼 캠퍼스에는 지상 4층 규모의 학습과 교육을 위한 68개 실로 구성된 학습지원센터가 있다. 2~4층까지 마치 망사를 두른 듯한 금속망의 입면과 함께 톱날형 천창이 특징적인 공간이다. 각 층 평면은 직사각형 구성을 사선으로 절단한 듯 디자인하였는데, 그 사선은 알바 알토의 마이레아 주택처럼 존 워들이 역동적인 공간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다.
전체 공간에서 나타나는 큰 특징을 몇 개 언급한다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우선 실내공간에서 1) 거대한 호리병같이 생긴 모뉴멘탈한 구조물, 2) 오브제 같은 계단실의 존재와 다양한 학습에 대응할 수 있는 계단형 공간 3) 최대한 실내의 보이드된 공간에서 난간을 와이어 등을 설치, 소통을 위한 개방형 공간, 4) 실내공간 곳곳에 설치된 학습을 위한 공간에 대한 배려, 5) 천창을 활용한 공간 느낌의 극대화 등이었다.
실내공간에 거대한 오브제 같은 구조물을 설치하는 특징은 존 워들이 이미 멜버른 디자인 대학에서도 시도했던 것이다. 세미나실 등의 기능이 있는 구조물은 실내공간의 랜드마크로써 길찾기에 유효한 수단으로 작용하는 동시에 하부나 상부는 휴먼 스케일적인 아늑한 공간으로 만남과 모임을 위한 친밀한 장소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오브제같이 연출된 긴 계단이나 계단형 공간은 엘리베이터와 달리 오르내리면서 우연한 만남을 유발, 창의적 사고를 자극하는 소통을 활성화시키게 디자인하였다. 실제로 답사를 하면서 계단식 공간이나 오픈 공간에서 여러 명이 모여서 토론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몇 개 층이 보이드된 공간의 난간에 와이어나 금속망을 설치하여 개방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상하 공간에 있는 사람들에게 서로 시각적인 소통을 유발하게 하는 장치로 멜버른과 모나쉬에서 공통으로 사용한 특징이다. 실내공간 곳곳에 다양한 토론과 학습을 위한 공간들을 설치한 것 역시 인상적인 특징 중 하나였으며 공간의 특성에 따라 계단의 경우는 상하부 레벨을 다르게 가구를 디자인한다든지 길게 연결된 난간 일부를 유리로 처리, 상층에서 하층이 내려다보이는 전망을 보면서 토론과 대화를 한다든지 하는 세심한 디자인의 배려가 엿보였다. 이것은 유럽이나 미국의 유수한 대학의 건축물에서도 볼 수 없었던 것이라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두 건축물 다 천창을 활용, 자연의 빛이 실내에 들어오게 하는 방식으로 미묘하게 시간의 변화를 느끼게 하는 것이 특징이었는데, 이것은 모나쉬보다는 천창 구조물에 오브제 같은 구조물을 매달았던 멜버른의 경우가 더 효과적이었다.
이외에 언급할 사항으로는 멜버른보다 한 단계 진화된 모나쉬 대학의 실내공간 색채계획으로 포인트가 되는 오브제형 공간 하부는 붉은색으로 강하게 도색하였지만, 나머지 공간은 파스텔톤을 중심으로 하면서 계단실만 검은색으로 마감, 전체 공간이 젊은이들의 공간이면서 품위가 있는 우아한 분위기로 연출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해외나 국내의 공간을 답사를 한다는 것은 그 공간을 통해서 디자인적인 교훈을 얻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호주 답사를 통해서 체험하였던 존 워들의 교육공간의 특징들이 국내 실내디자인에도 타산지석으로 자극을 주기를 바란다.
글 | 김문덕(건국대학교 실내디자인 전공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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