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친분이 쌓였다 싶었던 같이 일하는 언니 오빠들이 담배 하나를 나에게 건넸다. 그들의 표정은 마치 새로운 동료를 만났다 싶었는지 해맑기 그지없었고, 담배를 건네던 한 손마저 가볍기 그지없었다.
"저는 담배 필 생각이 없어요!"
이때부터였다 나의 유년기가 피곤해지기 시작한 시점이. 나의 단호했던 거절이 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거절의 말을 전달한 후 갑자기 싸늘하게 변해버린 공기를 인지를 했지만 그 당시 나는 그들이 무섭기보다는 내 인생이 안 좋은 쪽으로 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훨씬 더 컸던 것 같다
그다음 날부터 나는 소위 따돌림이라는 것을 당하기 시작했다. 일을 하고 있으면 쓸데없이 이를 방해했고, 내가 조금이라도 쉬운 파트에 있다면 매니저한테 말해 그 자리를 빼앗고 제일 어려운 자리로 보내버렸다. 대놓고 욕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상한 소문까지 내서 나를 세상에도 없을만한 쓰레기로 메이킹했다.
혼자서 버티기는 괴로웠지만 나는 아르바이트를 돈을 벌기 위해 시작했다는 정확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엄청나게 무너지거나 멘털이 깨질 정도는 아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은 주로 2가지 부류가 있다. 생계가 진짜 어려워서 돈이 필요한 친구들 그리고 청소년기를 방탄하게 보내기 위해 돈이 필요한 친구들.
후자의 이유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친구들은 생각보다 명분이 약해서 그런지 조금만 일이 귀찮고 어렵다 싶으면 쉽게 일을 그만두었다. 생각보다 햄버거집 아르바이트가 어려워서였는지 다행히 나를 괴롭히던 인간들은 빠르게 로테이션되었고, 직원들이 점점 물갈이가 되어가면서 나에 대한 괴롭힘은 점차 없어졌다.
직원들의 로테이션이 빠르게 일어나기는 했지만 새로 들어오는 아르바이트생들의 형태가 크게 바뀌지는 않았으니, 나에게 들어오는 검은 영향력은 꾸준히 지속되었다. 하지만 연차가 쌓이고 나이가 쌓이다 보니 그 어렸던 고1 시절만큼 주눅 들거나 눈치를 보지 않게 되었다. 당당히 거절을 이어갔고, 당당히 그들을 거부했다.
사람의 인생에서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고 어른들이 계속 이야기한다.
"닮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해라!"
"주변 지인들의 사회적 위치가 10년 후 너의 자리가 될 것이다!"
"끼리끼리 논다"
등등 이런 말을 심심치 않게 살면서 들어봤을 것이다. 나는 10대의 아르바이트 생활 속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은 일찍 이 말들의 의미를 깨달은 것 같다.
만약 나를 괴롭혔던 그 사람들이 좀 더 악랄한 사람들이 었다면 어땠을까? 일이 쉬워 그 사람들이 그만두지 않고 쭉 같이 일을 하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온전히 버텨냈을 수 있었을까? 가끔 문뜩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그리고 역으로 내가 아르바이트라는 상황 그 자체 속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되었을 일이잖아?라는 생각도 하곤 한다. 아예 그런 상황 속에 나를 밀어 넣지 않았다면..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우고 훌륭한 경험도, 기억도 쌓은 것이 많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잃을 뻔한 것들도 많았다. 이 모든 일들을 겪고 난 후 나는 또 다른 시작을 할 때는 꼭 하나의 필터를 거치고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성장할 수 있는 일인가?, 그로 인해 펼쳐질 많은 일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머리에 돌려보고 일을 시작한다. 나를 해치면서까지 해야 할 일은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없다는 걸 몸소 체득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옛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 어둠 속에서 혼자 허우적대고 있던 10대의 나에게 미안하단 생각이 계속 든다. 왜 일찍 그만두지 않았는지, 왜 그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는지, 왜 미련하게 버티고만 있었는지.
다시 과거를 회상했을 때 40대의 내가 30대의 나에게 미안할 일이 단 하나도 없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