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센토 Nov 24. 2021

소라 고동 이야기

@ Akashi


여름이 가네요. 유난히도 긴 여름이었습니다. 제 분을 못이겨 셔츠의 등판이 땀으로 누렇게 절을 때까지 걷기도 했고, 뭐가 그리 서러워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에 술을 마시다 누군가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절대 지나가지 않을 것 같은 순간들도 결국은 흘러간다는 것. 그러네요. 생의 한 문턱을 통과하듯 여름이 갑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마음 한구석이 설레입니다. 좀 더 어릴 때엔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속절없이 시간이 흘러 갑니다. 하나, 둘 닫혀가는 문들을 보면서 생각해봅니다. 그래, 떠나자꾸나. 선택은 자유이지만 분명한 건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구나. 익숙한 곳을 떠나야 비로소 삶이 시작되는구나. 그게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운명이구나. 


떠나가는 여름에게 어디로 가니, 하며 괜시리 실없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정신없는 회사일을 핑계로 한동안 빈둥거렸으니 오늘은 글을 써야겠다, 고 마음먹었으나....계속 같은 곳을 헤매고 있는 기분이다. 마치 두 개의 내가 존재하는 듯 과거의 나를 만나고 이후 - 정확히는 과거에 쓴 기획안을 다시 읽은 뒤 - 에는 그런 느낌이 더욱 강해졌다.  


삼십대 초반의 나로부터 한, 두발자국은 나갔으려나. 그 때는 젊음과 패기라도 있었을텐데 지금은 불룩해진 술배 밖에 없다고 하면, 비도 오고 바람도 불고 날씨도 꿀꿀하니 자기 파멸의 글쓰기로 향하거나 당장 노트북을 접고 술이나 마시려 들 터이니, 이 쯤에서 멈추고... 다시 한번 그 때로 돌아가본다. '소라고둥 이야기'라는 글의 일부이다.


올해 제가 쓰고자 선택했던 책의 주제가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알 것 같은데, 계속 손에 잡히지 않고 마음 속에서 모호하게 떠다닐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텅 빈 풍경 속을 하릴없이 거닐던 중, 파도가 쓸고 간 자리에 놓여진 소라고둥 껍데기를 발견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나는 저 바다 위를 헤엄쳐 가고 있는 줄 알았더니, 이 작디 작은 소라 고둥 껍데기 안에 머물고 있었구나. 사방에 경계를 만들고, 벽을 쌓아 올리고, 그 안을 맴돌고 있었구나. 세상 곳곳의 풍경과 함께 떠도는 줄 알았더니 그저 스스로 규정지은 딱딱한 소라 고둥 안에서 자족하고 있었을 뿐이구나. 이 좁디 좁은 껍질이 내 영혼의 집이자 세상이었구나."


필시 잘못 본 것임이 틀림없다. 마치 판타지 영화나 옛날 이야기 속에서 마녀의 술책으로 여행을 하는 무리가 같은 숲 속의 같은 자리를 계속 맴도는 느낌이라고 할까? 어떻게 15년 전과 지금의 깨달음이 이리도 같을 수 있을까? 


굳이 변명 같은 위안을 해보자면 이 과정은  원이 아닌 소라 고둥을 닮은 나선의 여정이리라. <리틀 포레스트>에서 한마디 말도 없이 집을 나간 엄마는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딸에게 편지를 보냈다. "엄마는 자신의 인생이 언제나 같은 지점에서 실패한 것 같았다고 적었다. 늘 원을 그리고 있는 것 같았다고도 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건 원이 아니라 나선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엄마는 말했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어차피 나는 이 모양 이 꼴로 태어났고, 이 작고 좁은 집이 내 유일한 감옥이자 탈출구이니 달리 뾰족한 수도 없다. 다행히도 오늘의 수확이 있다면 '사이'에 대한 어느 디자이너(야마구치 노부히로)의 글을 발견한 것이다. 


“사이間”는 두개의 사물 사이에 놓여 있는 빈 공간에 존재한다. 이것은 “無”라는 글자에 의해 표상화되어 있는 ‘없음 또는 비어있음’을 가리킨다. 활자의 영역에서는 선과 글자 사이의 공간이 주재主在와 부재附在로 경계지어지고 있다. 여기에서 “사이”는 하나의 개념이나 추상으로서가 아닌, 그 자체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 “사이”와 “여백”은 단순히 비어있는 흰색 공간을 의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공간 속에 내재되어 있는 분명하고 논리적인 질서 체계를 가리킨다. 나의 디자인 세계는 주로 이”사이”와 “여백”의 창조과정에 몰입되어 있다. 나는 미지의 영역을 바라보며, 그것을 아름다운 방식으로 재구성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사이”와 “여백”은 일종의 형태, 공간 그리고 반대 형태를 구성한다. 


무언가를 짓는 것은 유형의 존재를 만드는 것 만은 아니다. 있음과 있음 사이의 텅 빔을 조율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 예전의 내가 찍은 점 하나가 있다. 또 여기에 오늘의 내가 찍은 점 하나가 있다. 그 사이에 아마도 내가 서 있으리라. 그 어딘가에 나의 이야기가 있다. 




작가의 이전글 새로운 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