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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센토 Dec 26. 2021

로라와의 대화

@ Yokohama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을까?


음. 일단 엄마하고 아빠가 회사에서 일하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고, 친척들도 모두 시장에서 장사를 하거나 혼자 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처럼 직장에서 일한다는 건 왠지 상상이 안 되었던 것 같고...


그럼, 부모님의 영향이 큰거네.


아니, 친한 친구의 영향이 가장 컸지. 어릴 때부터 사귄 옆집 친구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기분 나쁘게도! 5살 때부터 독일에서 피아노 공부를 할 거라고 말했어.초등학교도, 중학교도 같이 다녔는데, 늘 콤플렉스였지. 피아노를 잘 칠 뿐만 아니라 - 가끔 학교를 안 나올 때는 독일에서 온 선생님에게 피아노를 배우는 중이었고 - 공부도 운동도 뭐든 나보다는 잘 했으니까. 그래서 늘 찾았던 것 같아. 내가 그애보다 잘 할 수 있는게 뭔지. 


정말 아무리 찾아도 없었고 그게 늘상 콤플렉스였는데, 그러다 글 쓰는 것, 읽는 것, 그게 뭐든 언어와 관련된 것에서 흥미를 찾았고, 그게 지금의 나인 것 같애. 중간에 그만 두지 않고 끝까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 친구는 피아니스트가 됐어?


응. 




자신을 찾아가는 길은 여러 갈래이다. 지금까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보통의 삶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주 낯선 길일 수도 있다. 가령 글을 쓰고 말을 가르치는 '로라'와 다섯살 때부터 하루 여섯 시간 이상 피아노를 친 '로라의 친구'에게 나처럼 회사원으로 산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한 길일테니. 그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 앞의 문을 열어 나가는 것이 한 권의  책이 될 수도 있다.    


<수상록>의 저자 몽테뉴는 서른 여덟에 세상에서 물러나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머물던 공직을 떠나 자신의 성 '치타델레zitadelle’에 은둔하기로 결심한 그는 자신이 머물 서재의 벽에 라틴어로 다음과 같이 적었다.


“궁정에서의 노예와 같은 봉사와 여러 공직의 무게로 오래전부터 지쳐 있었지만 미셀 드 몽테뉴는 여전히 모든 힘을 고스란히 지닌 채 1571년 2월 마지막 날, 38세가 되는 날에 숫처녀 같은 뮤즈의 가슴에서, 그 편안함과 안전함 속에서 쉬기로 결심했다. 여기서 그는 자기에게 남아 있는 삶의 나날들을 보낼 것이다. 그가 이 거처와 조상들의 평화로운 안식처를 지킬 수 있도록 운명이 허락해주시기를 희망하면서 그는 이 장소를 자신의 자유, 고요함, 무위에 바친다.” *


그의 말처럼 우리는 삶의 대부분을 당신은 ‘무엇 무엇을 해야한다’라는 사회의 의무에 소모한다. 그러나 어떤 나이가 되면 우리는 우리의 의무 뿐 만 아니라 나이에 대한 책임 또한 져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삶에는 걱정하고 짊어져야 할 짐이 많다. 게다가 우리는 몽테뉴처럼 넉넉한 유산과 거주할 성을 상속받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우리는 당신의 삶이 자신에게 묻고 있음을 알게 된다.


500여년 전 몽테뉴는 혼란한 바깥 세상을 뒤로 한 채 자신의 서재에서 오로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풀기 위해 책을 벗삼아 다음과 같이 사소해 보이는 것들에 대한 글을 써내려갔다. 


- 우정에 대하여

- 식인종에 대하여

- 옷 입는 습관에 대하여 

- 허영에 대하여

- 엄지손가락에 대하여


마음이 가는 데로 쓴 이 글들, 총 107편을 하나로 묶은 것이 바로 그의 저서 <수상록Essais> - 영어로는 에세이(Essays)이다. 이 방대한 책을 하나의 주제로 꿸 수 있을까? 그는 말한다. “나는 이야기의 주제를 고정할 수 없다. 주제는 본래부터 술에 취한 듯 정신없이 비틀거린다.” 그러나 다만 한 가지 소재가 있음은 틀림이 없다. 다시 그의 말이다. “독자들이여, 나 자신이 바로 이 책의 소재이다. 이렇게도 경박하고 부질없는 일이니, 그대가 한가한 시간을 허비할 거리나 될지 모르겠다.” **


그는 뛰어난 작가가 되거나, 위대한 시인이 되고자 하는 야망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는 글을 통해 누군가에게 인생의 교훈을 가르치려 들거나 자신을 위대한 인물로 재가공하고자 하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그저 자기 자신에 대한 솔직한 탐구와 앎에 대한 노력을 담았을 뿐이다. 


프랑스어로 ‘에세예(essayer)’는 ‘시도하다’라는 뜻이다. 그렇게 그는 자신에 대한 무모한 탐구를 시작했고, 그의 실험은 이전에는 존재한 적이 없었던 ’에세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   




* 슈테판 츠바이크, <위로하는 정신>


** 몽테뉴, <수상록>의 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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