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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센토 Dec 26. 2021

부딪히다

@ Kagurazaka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카구라자카의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잠시동안 머물다 떠나는 것이 아쉬워 모처럼 카메라를 들고 길을 나섰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려다 조금 더 걸어보기로 한다. 


고백하자면, 낯을 가리고 숫기가 없는 나는 정면에서 누군가를 겨냥하지 못한다. 때문에 나의 카메라는 보통 누군가의 뒷모습 혹은 프로필을 스치듯 잡는다. 되도록 찍히는 사람이 눈치채지 못했으면 하는 바램을 담아. 사람이 있는 풍경은 대개 그렇다.


그런데 어두운 골목 한 구석을 겨누고 있던 카메라의 파인더 속으로 누군가 불쑥 들어왔다. 그는 브이자를 그리며 해맑게 포즈를 잡는다. 주변은 어둡고, 어둠에 취약한 카메라의 셔터는 더디게 반응한다. 꾸욱 있는 힘껏 셔터를 눌러 겨우 한 컷을 찍는다.


그제서야 나는 그가 무언가를 배달하는 중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한 컷 더 찍으려 하자 그는 또 다른 포즈를 취했다. 오토 포커스를 매뉴얼로 바꿀 순발력을 내지 못해 또 꾸욱, 제대로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 한 장을 남겼다. 그는 여전히 밝은 표정으로 재빠르고 경쾌하게 다시 제 갈 길을 갔다.

 

어느새 비가 그쳤다. 그가 내게 건네주고 간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어떤 것들은 그렇게 날아와 부딪힌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각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몸짓으로. 또 어떤 것들은 시작된다. 그런 우연한 마추침과 함께.




[……………………………………………………………………….]

비가 온다.

그러니 우선 이 책이 그저 비에 관한 책이 되기를. 말브랑슈는 “왜 바다에, 큰 길에, 해변의 모래 사장에 비가 오는지”를 자문했었다. 다른 곳에서는 농토를 적셔주는 이 하늘의 물이, 바닷물에 대해서는 더해주는 것이 없으며 도로와 해변에서도 곧 사라져 버리기에. 그러나 하늘이 도운 다행한 비이든 반대로 불행한 비이든 이런 비가 문제가 아니리라. 그와 전혀 달리 이 책은 유다른 비에 대한 것, 철학사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진술되자마자 즉각 반박되고 억압된 심오한 주제에 관한 것, 허공 속에서 평행으로 내리는 에피쿠로스의 원자의 ‘비’, 그리고 마키아벨리, 홉스, 맑스, 하이데거 또 데리다와 같은 이들에게서 보이는, 스피노자의 무한한 속성들의 평행이라는 ‘비’에 대한 것이다. 


알튀세르는 <마추침의 유물론이라는 은밀한 흐름>이란 논문의 첫머리를 위와 같이 시작한다. 비가 내리는 풍경을 긴 말줄임표로 대신한 감각도 인상적이지만, 이 글에서 논하고 있는 '우연'과 '마주침'이란 주제도 흥미롭다. 기원 전의 철학자 루크레티우스는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원자들의 우발적인 마주침이 우주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와 "억압된 심오한 주제"를 따르는 이후의 철학자들에 따르면 우주가 시작되는 풍경은 마치 원자의 비가 내리는 것과 같다. 그 곳에는 어떤 목적도, 논리도, 근거도, 당위도 없다. 우리의 머리 위에 떨어지건, 농토를 적셔주건, 바다의 일부가 되건 간에 그저 비는 내릴 뿐이다. 그리고 "클리나멘Clinamen이 돌발한다."*


클리나멘은 무한히 작은, ‘최대한으로 작은’ 편의偏倚(기울어짐)로서, 어디서, 언제, 어떻게 일어나는지 모르는데, 허공에서 한 원자로 하여금 수직으로 낙화하다가 ‘빗나가도록’, 그리고 한 지점에서 평행낙하를 극히 미세하게 교란시킴으로써 가까운 원자와 마주치도록, 그리고 이 마주침이 또 다른 마주침을 유발하도록 만든다. 그리하여 하나의 세계가, 즉 연쇄적으로 최초의 편의와 최초의 마주침을 유발하는 일군의 원자들의 집합이 탄생한다.


위 가정에 따르면 하나의 세계, 우리가 사는 우주는 '클리나멘'이란 아주 작은 편의(기울어짐)으로 인해, 빗나감으로 인한 마주침으로부터 탄생했다. 하나의 편의偏倚가 부딪힘을 만들고, 작은 어긋남이 수많은 충돌을 빚어낸다. 그리고 "태초에 빛이 있었다."


'나'라는 소우주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가끔 나를 구성하는 원재료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뿐 어딘가에 온전히 '나'라는 주체가 말끔한 얼굴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착각 같은 것 말이다. 물론 각자의 삶이 어느 정도 결정되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마차의 바퀴가 길에 파여 있는 궤도를 따라가듯 각자의 과거와 타고난 습성이 삶의 경로와 패턴을 어느 정도 형성하는 것이다. 허나 사는 게 뜻대로 되지 않는 것 또한 진실이다. 길 위에 돌부리나 웅덩이는 있기 마련이고, 그런 작고 큰 마주침들이 우리를 또 다른 길로 이끈다. 


그러니 비가 내리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고, 해가 떨어지면 오늘의 석양을 즐기자. 모든 것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문득 "클리나멘이 돌발한다."













* 알튀세르, <마주침의 유물론이라는 은밀한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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