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hae
흐린 아침 바닷가였다. 한 남자가 작은 나무배 한 척을 크고 푸른 물 위에 띄우고 그물을 드리우고 있었다. 배는 조류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그물은 바다의 하얀 속살 아래로 사라졌다. 인적 드문 모래톱 위에서 바라보는 고기잡이 풍경은 참으로 고요했지만 어부의 손은 한시도 쉬지 않고 바삐 움직였다.
그 날 하루동안 그는 무엇을 잡았을까? 알 수 없다. 어부와 나 사이로 갈매기 날고 잿빛구름이 낮게 떠갈 때 이런 생각 한조각도 흘러갔다. 내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가 없으니, 저 크고 푸른 물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다. 영원히 모를 일이다.
다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배 한 척 띄우고 그물을 드리우는 일이다. 그리고 주어진 시간동안 바삐 손을 놀려 다시 그물을 걷어 올리는 것이다. 아마도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이 나의 일부일 것이다. 그리고 파도에 실려간 그 시간들이 아마도 나의 하루이리라.
‘나는 창문 너머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겠구나.’ 한창 방황하던 십대 후반 즈음, 도서관을 향하던 길이었다. 어쩐지 그런 슬픈 예감이 들었다. 실제로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닌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이 나이구나, 하는 그 예감은 어느 정도는 들어맞았다.
영상을 만들고 싶었으나 적당히 타협하여 광고를 만들겠다 했고, 구체적인 형상을 지닌 무언가를 현실 속에 구현해내고 싶었으나 추상적인 개념을 다루는 기획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흘러왔다. 산다는 건 어차피 예측못할 변수투성이에다 살이 찢기고 피가 튀는 진흙탕 싸움이니 적당히 삶에서 거리를 두고 품위를 유지하고 싶었다. 그렇게 주위에 벽을 쌓아왔다. 창 밖 세상을 구하고 싶었으나 정작 방 안에는 나 혼자 뿐이었다.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총 2개의 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고도'라는 미지의 인물을 끊임없이 기다리지만 그는 연극의 막이 모두 내릴 때까지 결국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단순한 줄거리를 담은 이 현대극은 두 막 모두 다음과 같은 장면으로 끝이 난다.
블라디미르 : 그럼 갈까?
에스트라공 : 가자.
둘은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
세 번은 완성을 향해 나아가지만, 두 번은 영원한 반복을 의미한다. 결국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는 오지 않을 것이고, 디디와 고고(연극 주인공들의 별명)는 그 어디로도 향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현대의 신화이다. 영웅들이 등장하고 출발 - 입문 - 귀환으로 완결되는 고대의 신화와는 달리, 현대를 사는 우리의 삶은 완성에 이르지 못하는 두 개의 막으로 구성된다. 우리는 끝없이 인생의 목표를 추구해 보지만 그 어디에도 가닿지 못하고, 온갖 미디어와 전문가의 처방전에 따라 일상을 재편해 보지만 그것도 잠깐일 뿐, 삶은 더욱 조각날 뿐이다.
무엇을 기다려 왔던 것일까? 어쩌면 내 삶을 이끌어줄 단 하나의 정답, 혹은 모든 문제를 한방에 깨뜨려 줄 거대한 망치 같은 것을 찾아헤맨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최선은 선의 적'일 뿐* 우리 모두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듯이 아무리 기다려도 세상을 구원해 줄 고도는 오지 않는다.
“음악이 울리고 있을 동안은 어쨌든 계속 춤추는 거야. 내가 말하는 것을 알겠어? 춤추는 거야. 계속 춤추는 거. 왜 춤을 춰야 하는지 생각하면 안 돼. 의미 같은 건 생각하면 안돼. 의미 따윈 원래부터 없는 거야. 그런 걸 생각하면 발이 멈춰. 한 번 발이 멈추면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게 돼.”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댄스, 댄스, 댄스>에서 양(羊)남자는 주인공에게 의미 따위를 생각하지 말고 계속 춤추라고 말한다. 계속 춤추는 방법은 ‘삶의 의미 따위는 생각하지 말고’ 그저 마음 속 기쁨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한차례 소낙비가 지나간 뒤, 제법 시원해진 바람을 한 모금 들이킨다. 그렇구나. 나를 창 밖의 풍경이 아닌 세상으로 이끌어주는 것은 바로 너구나. 너였구나. 풍문을 듣자하니 고귀한 진리는 그 어디에도 없다더구나. 여기 뿐이다. 그래, “여기가 바로 로도스 섬이다. 여기서 한번 뛰어 보아라.” ***
* "최선은 '선'의 적이다." - 볼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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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을
온전히 살아 보려 한 것 밖에 없는데,
그게 왜 그리 어려웠을까?
- 헤르만 헤세, <데미안>
*** 칼 마르크스, <자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