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uhari Messe
‘사는 게 뭘까?’란 실없는 웅얼거림과 함께 그는 노래를 시작했다. 처음은 나직하게, 곧이어 묵직한 기타 리프와 함께 강렬한 외침이 터져나왔다. 둥. 둥. 둥. 드럼 비트가 심장을 울린다. 너도 나도, 그런 멍청한 질문 따위는 잊은 지 오래,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하나 둘, 공중으로 뛰어오른다. 날아오른다. 춤을 춘다.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리듬에 따라.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에서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고, 식어버린 닭튀김을 우적우적 씹으며, 예고없이 쏟아지는 소낙비를 맞으면서 노래를 따라 부르고, 때때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닷 바람에 달아오른 몸을 식히기도 하면서 하루가 간다. 아직도 세상살이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것, 이것 하나는 알겠다.
무더운 여름을 보내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테지만, 나는 이삼십대의 여름을 록 페스티발과 함께 보내곤 했다. 이런 패턴이다. 서서히 더위가 시작될 즈음 티켓을 예매하고, 아티스트의 라인업을 확인하며 그들의 음악을 듣다가, 페스티발 기간에는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마음껏 뛰어놀고 집에 돌아오면 지쳐서 쓰러진다. 그리고 한바탕 몸살을 앓고 나면 ‘아, 또 올해 여름도 지나갔구나’ 하는 시원섭섭한 기분이 되곤 한다.
그런데 직장에서 발령을 받아 일본으로 간 이후에는 그 연례 행사를 치루지 못했다. 가기 전부터 잔뜩 벼뤘던 후지 록 페스티발도, 써머소닉도, 첫 해는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두번째 해는 가야지, 가야지 하다 표가 매진되어버린 채 여름이 지나가 버렸다. 그러니 회사를 그만두기로 한 그 해 여름이 마지막이었다. 마음과는 달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면 록 페스티발을 위해 일본에 오는 사치를 하는 게 그리 쉽지 않을테니 말이다.
이틀 동안 열심히 놀았다. 이번 페스티발의 라인업이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음에도, 두 달 전부터 아팠던 무릎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상관없다는 듯 힘껏 뛰어 놀았다. 거친 기타 연주와 쿵쾅거리는 드럼 비트에 몸을 맡기며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 생은 황홀한 것이었다.
어느덧 해가 기울어가고 잠시 쉬고 있을 즈음, 목덜미에 한줄기 저녁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관객석에 앉아 스탠딩석에서 공연을 즐기는 청춘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젊음란 참 좋은 것이다. 저렇게 마구 날뛰고 흩뿌리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것이 젊음이구나.” 싶다가도 사방에 어둠이 깔리고 점점 밝아져 가는 조명과 함께 이런 부질없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바람은 지나가게 마련이구나. 해는 지기 마련이구나. 이 찬란한 젊음들도 축제가 끝나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삶의 무게를 견뎌야겠지.” 그리고 이런 생각들 틈새로 솔직한 욕망 하나가 꿈틀거리며 치솟았다.
“아, 나는 반짝이는 별이 되고 싶구나.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흔하디 흔한 돌멩이로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구나. 젊음은 저렇게 허공에 흩뿌리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것이지만, 이제는 부서진 유리조각처럼 여기저기 흩어진 파편들을 모아 하나의 형체와 생명을 부여 해야겠다. 있는 힘껏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야겠다.” *
어둠이 내린 거대한 스타디움에 락밴드의 연주가 울려퍼지고, 다시 달려나가 흥겨운 비트와 낯익은 멜로디에 몸을 맡긴다. 뜨거운 용암처럼 꿈틀거리며 축제의 밤이 깊어간다. 아픈 다리를 절룩거리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리운 여름밤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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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내 세상도 하나 있어야겠다. 내 세상만 가질 수 있다면 구원을 받아도 좋고 지옥에 떨어져도 좋다." - 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