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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센토 Oct 13. 2024

꿈 속의 꿈

@Ginza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에게 쫓기는 꿈을 꾸다 잠에서 깼다. 노곤해져 잠시 누웠다가 너무 깊이 잠든 모양이다. 어느새 사방이 어둑어둑하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돌아온 뒤 소파에서 잠들었다 깼는데 집에 아무도 없던 오후 다섯시 즈음처럼 괜시리 가슴이 먹먹해져 침대 옆 커튼을 활짝 열어 젖혔다. 


이상하다. 분명 해가 졌는데 눈이 부시다. 가늘게 눈을 뜨고 창 밖을 바라보다 그제서야 내가 아직도 꿈 속에 있음을 깨닫는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아 천근같은 눈꺼풀을 힘껏 들어올리니, 젖혀진 커튼 틈으로 늦은 오후의 햇빛이 밀물처럼 들이친다. 새하얀 빛살을 피해 몸을 돌려 시계를 보니 오후 세시 십분, 무언가 다행이라는 기분과 함께 맥이 탁 풀렸다.    


그 날, 햇살 속에서 꿈 속의 꿈을 꾸었다. 겨우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 앉는다.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보니 조금씩 헷갈리기 시작했다. 과연 나는 지금 잠을 깬 것일까, 아니면 아직 또 다른 꿈 속인 것일까.




이상의 ‘날개’란 소설에서 주인공은 아내가 아스피린이라고 속인 최면제 아달린을 먹고 취해서 몇날 며칠을 잠 속에서 헤맨다. 그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다. 이 모든게 그 놈의 돈 때문이라는 것을. 아내는 그 돈이란 걸 벌기 위해서, 다른 방에서 손님을 받기 위해, 자신에게 감기약이 아닌 최면제를 먹여야만 했다는 사실을. 


하늘에서 지폐가 소낙비처럼 퍼붓기를 바래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돈이 없기에 사랑도 없는 서글픈 주인공은 집을 나선다. 약이 덜 깬 채 한참동안 군중 속을 헤매다 모든 행복을 가질 수 있는 미쯔코시 백화점 앞에 다다르지만, 역시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외쳐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돈이 없는 한, 그는 그 어디에도 가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 뿐만 아니라 우리 또한 ‘돈’이란 최면제가 지배하는 ‘자본주의’*라는 달콤한 악몽을 꾸고 있으니까. 그리고 또 우리가 행여나 깊은 잠에서 깨어나려 하면 누군가 우리의 입 속으로 또 한 웅큼의 아달린을 털어 넣겠지.




*

"자본주의의 핵심은 햇빛이 날 때 우산을 빌려 주었다가 비가 내리는 순간 돌려달라고 하여 이익을 높이는 메커니즘이다. 그런 곳에서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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