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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센토 Oct 20. 2024

피터팬

@Gaehangro


난 너무 많이 사고 팔렸죠

강해지고 더럽혀졌죠


다시 돌아가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하잖아요


I want to run away

멋진 어른이 되고 싶었었는데


Oh mommy please tell me 

what should I do

내 초라한 배가 무너져요 *


(중략)




평일 오전,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한잔 시키고 창가에 앉아 노트북의 빈페이지를 펼친다. 텅빈 화면만큼의 가능성과 또 그만큼의 막막함과 마주한다. 눈 앞의 텅빈 페이지와는 달리 카페 앞 오피스가는 점심 시간을 준비하는 직장인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하다. 그와 달리 나는 특별히 정해진 점심 시간이 없는데다가 배도 별로 고프지 않으니 달콤쌉싸름한 커피를 마시며 정신을 좀 차려볼까 한다. 


직장을 그만둔지 제법 시간이 지나고 나니 백수의 삶도 직장인 못지 않게 바쁘다. 소소하게 챙겨야할 일상의 잡무와 표나지 않는 집안일, 출근하지 않으니 한가하다는 생각에 지인들이 마음 편히 부탁하는 돈 되지 않는 일들이 직장 생활의 빈자리를 빠르게 메꿔 나간다. 그럼에도 매달 찍히던 월급이 없으니 통장의 잔고는 더욱 빠른 속도로 비어간다는 명확한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게다가 잔고가 줄어듦에 따라 직장일로 분주하던 마음의 빈자리는 불안이 마치 보너스인양 잠식해 간다.


"회사를 그만둔 지 채 일주일도 안 되어, 나는 곧바로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 나는 다리가 셋 달린 의자처럼, 매일 하는 일 없이 넘어졌다.”** 직장을 그만 둔 많은 직장인들의 고민처럼 일하지 않고(출근하지 않고) 생활한다는 것, 더 나아가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다들 내게 이렇게 묻는 듯 하다. '너의 게으름이나, 모자람 때문이 아니라면 대체 왜 직장을 그만둔 것인가?'


어찌 보면 우리는 평생을 남이 정해준 대로 살아간다. 정해진 시간에 학교에 가고, 정해진 곳에서 수업을 받고,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또 집에 돌아간다. 직장인이 된다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돈을 벌고 있으니 다 큰 어른 인 듯 느껴지겠지만 다 자란 어른이들도 남이 정해준 시간에 출근해서, 정해진 곳에서 일하고, 정해진 시간에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니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어떻게 시간을 쓰고, 또  살아갈 지에 대해 배울 시간이 없다. 이는 성공한 직장인이라고 해서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50대 이후에 은퇴한 날고 긴다는 임원들이 조직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순간 얼마나 초라해지지는 지를 우리는 풍문과 경험으로 알고 있다. 


조직은 우리에게 '일시적인 편리'를 제공해준다. 허나 커피믹스나 카라멜 미키아또의 단 맛과도 같은 조직의 편리함에 길들여지면서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린다. "나 = ㅇㅇㅇ 차장"이 아니라면 대체 누구인가? 그러니 직장을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자신에게 두 가지의 존재 증명을 요구받게 된다. 하나는 조직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스스로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가?' 또 하나는 조직의 직함과 명함이 없는 '나는 대체 누구인가?' 그리고 이를 위해 어린 시절, 조퇴를 한 어느 날의 어색한 자유 같은 일상을 '무엇으로, 어떻게 채워 나갈 것인가?'   





* 김여명, <피터팬> _ 싱글 <방백>에 수록


** 조안 B. 시울라, <일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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