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agara Falls
뉴욕 월스트리트의 한 변호사는 니퍼(Nipper)와 터키(Turkey)라는 별명의 두 필경사와 진저 넛(Ginger Nut)이란 별명의 어린 사환을 고용해서 일하고 있다. 알콜 중독증인 터키는 낮에는 차분했으나 오후에는 흥분했고, 복통으로 고생하는 니퍼는 오전에는 불안했으나 오후에는 차분했다.
어느날 변호사는 한 명의 필경사를 더 고용했는데 그의 이름은 바틀비(Bartleby)였다. 번갈아가며 말썽을 피우는 두 필경사와는 달리 한결같이 차분한 바틀비가 변호사는 마음에 들었다. 처음에 바틀비는 묵묵히 자신의 업무를 수행했다. 그런데 어느날 변호사가 필사에 대한 검토를 부탁하자 바틀비는 대답했다. “안하고 싶습니다.” 이후 바틀비는 점점 일을 거부하기 시작하고 변호사가 이유를 묻고 다그쳐보아도 그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안하고 싶습니다.”
변호사는 그를 설득해보기도 하고, 이해해보려고도 하고, 동정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가 자신의 필사 업무까지 거부하자 해고를 통보했다. 하지만 바틀비는 사무실에서 움직이려 들지 않았고 변호사는 결국 자신의 사무실을 옮기기로 결정했다. 이후 변호사는 바틀비가 유치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간다. 바틀비의 야윈 모습에 놀라 사식을 넣어주지만 며칠 뒤 변호사는 그가 끝내 식사를 거부하고 굶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
‘더 이상 하기 싫다!’ 그래 그 마음이었다. 직장을 그만두기로 마음 먹은 순간, 나를 뚫고 나온 대답은. 비록 ‘식사를 하는 것’ 조차 ‘안 하고 싶습니다’며 버티다 굶어죽은 <필경사 바틀비>의 심정은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엉덩이를 닦아 주는 일 따윈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여기에서 묘한 반전이 일어난다. 짧고 위태로운 자유로움을 잠시 만끽한 이후에는 다시 먹고 사는 일에 대한 걱정이 조금씩 또아리를 틀기 시작하고, 조직의 테두리 밖에서 먹고 살겠다고 결심하는 그 순간부터 이제는 사장이나 직장 상사의 엉덩이 뿐만 아니라, 나와 관계없는 길거리의 행인들 엉덩이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웃지 못할 사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새장을 빠져나온 새는 과연 자유로운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예스’이기도 하고, ‘노’이기도 하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재능 - 혹은 상품성 - 을 시장에서 검증받겠다고 생각한다면 안타깝게도 당신은 더 크고 치열한 무법천지의 새장에 갇히게 될 것이다. 어쩌면 뻐꾸기 둥지가 그러하듯 새장 밖의 새는 이 세상에 없는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만에 하나, 나의 재능을 ‘시장‘ 따위에 팔지 않겠다 - 혹은 더 이상 다른 누군가를 위해 내 인생을 낭비하지 않겠다 - 는 몹시도 중대하고 문학(?)적인 결심을 하게 된다면,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기 시작한다면 당신의 삶은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자신 만의 예술을 향해 나아가게 될 것이다.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그렇다. 불가능해보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해보는 것이다.
*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의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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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에서 탈출한 새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한층 더 커다란 ‘새장’이었다. 히치콕이 (영화 ‘새’에서) 시도한 바는 ‘만국의 새들’을 한 마리도 빠짐없이 하나의 동일한 쇼트 안에 가두는 것, 그리하여 오싹한 ‘히치콕의 새’를 생산하는 데 그들을 총동원하는 것이다.” - 히로세 준, <봉기와 함께 사랑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