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juku
페르시아의 총사령관은 스파르타의 사신 스페르테스와 불리스에게 경의를 표하며 호화롭게 대접했다. “스파르타인들이여, 그대들은 어떤 이유로 크세르크세스 왕의 호의를 거절하는 것인가?” 그는 의아해하며 두 사신에게 물었다. “크세르크세스 왕은 가치 있는 사람들을 몹시 귀하게 여긴다네. 만약 왕에게 굴복하면, 그대들도 왕의 호의를 얻게 될 걸세.”
그러자 두 명의 스파르타인들은 대답했다. “당신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충고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선善을 기대하며, 그것이 마치 왕의 호의라고 믿고 계시는군요. 그렇지만 당신은 우리가 누리는 선을 알지 못하고 있소. 자유가 어떠한 맛인지, 얼마나 달콤한지 모를 것이오. 만약 당신이 그것을 맛보았다면, 우리에게 창과 방패 뿐 아니라, 이빨과 손톱으로써 그것을 지키라고 충고했을 것이오.” *
‘300’이란 영화를 보았다면 ‘발 아래 땅을 뒤흔들고 강물을 들이마셔버릴 만큼’ 어마어마한 페르시아의 대군단에 맞서 싸우는 스파르타 무사들의 용맹한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영화와 프랭크 밀러의 원작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위 일화는 복종의 징표로 스파르타의 흙과 물을 요구하는 페르시아의 사신들을 우물에 빠뜨려 생매장한 뒤 페르시아 측에 보낸 스파르타의 사신과 페르시아의 총사령관이 나눈 대화이다. 스파르타의 두 사신은 끝까지 복종을 거부하고 결국 죽음을 선택한다.
라 보에티는 ‘‘자발적 복종’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독재자와 폭군의 권력은 어디에서 유래하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자발적으로 권력에 굴복하려는 우리의 태도에서 기인한다. 폭군은 하나의 불꽃과 같다. 불 주위에 탈 것이 없다면 스스로 스러져 버릴 것이나, 숱한 사람들은 불나방이나 땔감처럼 스스로 노예가 되기를 자청하며 불로 모여든다. 중요한 것은 자유에 대한 욕구와 의지이다. 지금 당장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을 것을 결심하라! 그러면 권력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붕괴될 것이다.
라 보에티가 열 여덟이 되던 해인 1548년에 썼다고 전해지는 약 500년 전의 대담한 논문을 읽으며 생각해본다. 아마도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너무 ‘길들여진’ 탓이리라. 세상은 말한다. 살기가 힘든 까닭은 우리가 아직 충분히 노력하지 않은 탓이라고. 그러나 단연코 아니다. 손, 발톱이 다 닳도록 열심히 일한다 한들, 주어진 현실과 권력에 말없이 순응하는 한 메시아는 이 땅에 오지 않는다.
이를 다만 열여덟살 젊음의 오래된 치기로만 치부하지는 말자. 미완의 세기를 고스란치 목격했던 노老역사가 또한 새로운 세기를 살게 될 다음 세대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그렇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 <자발적 복종>’에서 발췌 및 재구성
** 에릭 홉스봄, <미완의 시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