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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센토 Jun 10. 2020

오래된 별빛의 기억

@ 코마자와 도리


그는 달리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달리기는 몸에 안 좋아’라고 굳게 믿고 있는 남유럽의 뚱뚱보 할머니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사실 몸을 쓰는 운동 자체를 싫어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뜬금없이 달려보고 싶어졌다. 퇴근 후 집에 들어서자마자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집을 나선다. 남들과 같은 방향으로 뛰는 것은 왠지 내키지 않아 사람이 달리지 않는 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컴컴한 골목길을 달리기도 하고, 같은 자리를 맴돌기도 하고, 막다른 길을 만나 되돌아 오기도 하다가 흐릿한 달빛 아래서 다음과 같은 표지판을 만났다. 늘 지나쳐다녔지만 미처 보지 못한 문구였다. 


“여기 이후부터는 모두 자기 책임(これより先は全て自己責任!)” 


그는 철망 앞의 경고 문구 앞에 서서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는 그 너머를 들여다보며 한참 동안 서 있었다. 보이지 않는 밤구름이 흘러가는 틈새로 어렴풋이 별들이 반짝였다.




우리는 모두 별이었다. 욕망(desire)이란 단어의 어원, desiderare의 뜻*은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을 뜻한다. 이 라틴어는 다시 sidus, 별이라는 단어를 품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무언가를 욕망한다는 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 즉 사라진 별을 그리워한다는 뜻이 된다. 작은 행성 지구가 우주의 한줌 먼지에서 시작되었으니,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안에 머물고 있는 우리 또한 어느 머나먼 별의 먼지에서 나왔을게다.


어쩌면 우리 자신으로 산다는 것은 태어나면서 잃어버린 그 별***을 찾아가는 과정에 다름 아닌지도 모른다. 살아가면서 강제로 부여된 사회의 욕망이 아닌, 자기 안에 내재되어 있는 그 별의 흔적을 되살리는 것, 그리고 그 아릿한 그리움의 향기를 따라 영혼 속에 새겨져 있는 오래된 별빛의 기억을 따라가는 것.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소설 <데미안>의 머리글에서 헤르만 헤세가 고백하듯이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 쉽지 만은 않다. 하지만 어차피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이고, 그 삶의 책임 또한 자신에게 있으니 이 여행의 끝에 그 누군가를 원망할 필요 는 없으리라. 봄의 기운이 살짝 비쳐나오는 주말 오후, 그들은 경고 문구 - 사실 위의 경고문은 어느 공원의 스케이트 보드장 앞에 붙어 있었다 - 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즐겁게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있다.












*

욕망이라는 단어의 라틴어 어원은 놀라워. 무엇일 것 같아?”

우리의 본능과 관계된 것이겠지만 혜규는 알 도리가 없었다.

“죄? 혹은 벌? 아니면 장님?”

혜규가 떠오르는 대로 말했다.

“Desiderare. 이 라틴어는 별이 사라진 것을 아쉬워한다는 뜻이야. 놀랍지? 욕망의 원래 뜻은 사라진 별에 대한 향수이며 그리움이야. 사라진 별, 그건 별이 인간의 조상이고 고향이라는 의식의 근원이 욕망이라는 말 속에 있는 거야. 모든 욕망은 향수인 거지. 우리는 전혀 모르는 것을 욕망할 수는 없어. 우리가 무엇을 욕망한다는 것은 실은 상실한 것에 대한, 말하자면 소유한 경험에 대한 향수라는 말이기도 해. 과거에 가졌던 것을 우린 욕망하는 거야.”


- 전경린, <언젠가 내가 돌아오면>



**  1990년 2월 14일 보이저 1호가 찍은 지구의 사진을 부르는 명칭이자 칼 세이건의 동명의 책 제목


***

“우리의 DNA를 이루는 질소, 치아를 구성하는 칼슘, 혈액의 주요성분이 철, 애플파이에 들어 있는 탄소 등의 원자 알갱이 하나하나가 모조리 별의 내부에서 합성됐다. 그러므로 우리는 별의 자녀들이다.”  - 칼 세이건,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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