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물결을 멍하니 바라보면
그냥 무아지경 속으로 들어간다
햇볕에 반짝 거리는 작은 은파(銀波)는
내 마음의 안정을 찾아준다.
바다 가득 찬 물결의 일렁임은
무한한 자유의 꿈을 준다.
비바람에 출렁거리는 파도는
화났던 미운 마음 깨끗이 씻어가 버린다
야경 속 배 스크류 소용돌이는
오색찬란한 희망이 되살아남을 일러준다.
오늘 넌 내 참 친구임을
또 한번 일러준다."
- 엄마의 <노트>에서
새벽에 눈을 뜨곤 어둠 속에 앉는다. 어제 읽었던 어머니의 글을 떠올려 본다. 물을 한 잔 마시고 책상 앞에 앉는다. 오늘 제출할 기획서를 마무리하고 잔뜩 김 서린 창 밖을 바라본다. 뿌연 창엔 가로등 불빛 하나 어려 있을 뿐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안개 속 풍경을 잠시 걸어본다. 감색 가로등 불빛을 별빛 삼아 마음 속을 서성인다.
"세상살이 한 덩어리 속에 인간이 자연에 순응 하듯 내 앞에 놓인 환경에 적응 하면서 그저 그렇게 살아 왔다. 지난 일도 지금도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무디어지고, 길들여진 내 일상의 표면일 뿐이다. 마음속에선 무한한 자유로움을 꿈꾸고 하고픈 일도 많았다. 벽을 보고 치는 스쿼시처럼 치고 되돌아 받아쳐야 하는 수고로움과 힘겨움에 포기하고, 벽에 부딪쳐 깨어지는 아픔이 두려워 손에 들고도 던져 보지 못한 야구공 같은 내 삶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어머니의 글에서 지난 삶에 대한 회환을 읽는다. 가슴이 먹먹해져 다시 한참을 서성인다. 간혹 전화 통화를 해도 급하게 끊어버리고, 오랜만에 만나면 짜증만 내곤 하는 못난 아들이다. 그렇게 잘하지 못하고 못한 것들만 쌓여간다. 롤랑 바르트는 1977년 어머니를 떠나보낸 뒤 그리운 마음을 담아 <애도일기>라는 노트를 남겼다. 1978년 4월 2일의 글이다.
내가 더 잃어버릴 것이 무엇인가. 지금 이렇게 내 삶의 이유를 잃어버리고 말았는데…… 그러니까 그 누군가의 삶을 걱정스러워한다는 그 살아가는 이유를.**
은빛 파도를 친구 삼아 마음을 달래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떠올려본다. 나도 마음 속 은빛 바다 한 조각을 꺼내어 본다. '어디로 가고 있는가.' 엄마의 회한이 내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 엄마의 <노트>
**롤랑 바르트, <애도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