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幾微)

@anywhere

by 인센토


어떤 낌새의 목록들. 저녁 그림자, 네 눈 속의 풍경, 쌉싸름한 촉감, 서걱이는 풀잎과 낡은 종이 냄새.


낯선 길모퉁이. 계절 사이를 스치는 별빛. 아릿한 추억. 한층 깊어진 물색(色). 고요한 달의 뒷편. 골목과 골목 사이를 헤매던 바람. 간밤의 숙취가 겨우 가실 무렵 올려다 본 파아란 하늘. 담벼락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 어색한 침묵과 차분한 웃음. 부슬부슬 내리는 옅은 빗자국. 한없이 고요하고 투명한 무늬.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의 이유 모를 설렘. 목덜미를 스쳐가는 가을의 기미(幾微).


조금씩 가을 냄새가 난다.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긴 여름도 이제 아침 저녁으로 살짝 꼬리를 낮췄다. 목덜미를 스쳐가는 가을의 조짐, 제법 시원해진 바람을 한 모금 들이킨다.



keyword
이전 01화어렴풋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