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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채 May 15. 2018

로테를 찾으셨습니까?

자이푸르

# 잘 마할로 가는 길


로테의 환영이 사라지자 난 베르테르의 슬픔에 빠진다. 사람의 말과 마음 또는 어떤 장소, 세상의 모든 것엔 표면과 이면이 있다지만 막상 그 이면과 마주하니 평정심을 잃는다.


그 옛 소설이 오랜 세월 변함없는 찬사를 받은 건, 아마도 베르테르처럼 우리의 마음에도 각자의 로테를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랑의 열정은 베르테르가 로테에게 보냈던 무수한 편지처럼 절절하므로, 베르테르의 슬픔은 곧 우리의 슬픔이다. 심금을 울리는 그의 연서를 쫓다 보면 어느새 몰입되어 마치 내 이야기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랑하는 대상은 어느새 로테가 되어 가슴 어딘가에 자리 잡고, 그렇게 연모하며 마음을 키워나가다가 그 대상은 실제를 초월한 환영이 된다. 어떤 장소에 대한 감정 또한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본다. 가보지 못하는 사이 그곳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며 어떤 기대감을 품게 되고, 그 기대감이 오래될수록 실제 이상의 환영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비로소 그 장소와 대면할 때, 그때 과연 어떤 느낌이 들까? 


나도 모르게 큰 기대를 품고 있었다. 어떤 곳에 대한 갈망이 깊으면 가보지 않고도 익숙해지는 장소가 있듯, 자이푸르는 어느새 환영 속에 자리 잡은 로테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막상 가까이 다가서자 그곳은 생각과는 사뭇 달랐다. 딱히 꼬집어 무엇이 다른지 설명하긴 어렵지만 '바람의 궁전'은 화려한 표면과 다른 이면의 모습, 그리고 존재할 만한 세상 모든 것이 뒤엉킨 ‘핑크시티’에 이유 모를 무력감을 느꼈다. 오랜 시간 한 사람에 대한 연정을 품다가 그 연정이 극도의 갈망으로 달아오를 찰나 그 사람을 실제로 보게 되었을 때의 감정. 그 감정을 떠올린 것도 같다. 어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미 더한 곳을 겪었음에도 발을 내딛자마자 떠나고 싶단 마음부터 가진 곳은 이곳이 처음이었다.  


# 바람의 궁전과 핑크 시티

 

혹 단지 지쳤을 뿐일지도 모른다. 마땅히 겪어야 할 여행의 권태기를 겪는 것이고, 자이푸르는 불운한 희생양이다.  릭샤 왈라에게 물었다. 

“어디 좋은데 없을까요?” 

대개 무뚝뚝하게 목적지만 던지던 내겐 드문 일이었다. 그런 예외를 알 리 없는 릭샤 왈라가 기꺼이 좋은 곳으로 안내하겠다며 시동을 걸었다. 좋다. 별 기대는 안 하지만 서둘러 그곳으로 가자고 말했다.  

 

그리고 그곳이 보였다. 핑크시티를 벗어나 암베르 포트와 자이가르 포트로 향하는 길목, 호수 위에 낡은 궁전이 떠 있었다. 표정을 살피던 릭샤왈라는 길가에 릭샤를 멈춰 세우고 득의에 찬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섣불리 실망하지는 말기를…” 사랑 역시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다가온다고 했듯, 애초 와보기도 전에 익숙해져 버린 유명 관광지에서 특별한 아름다움을 기대한 건 무리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움은 보이는 표면보다 이면에 존재하고, 그곳을 찾으면 우린 비로소 로테를 만나게 된다. 각자의 로테는 다르지만, 내겐 호수 위의 버려진 궁전이 바로 그랬다. 이름은 '잘 마할'.  


부디 당신의 로테를 만나기를…

 

# 잘 마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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