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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채 Aug 08. 2018

우리가 실제로 만났을 때

아그라의 도비 카스트



아그라의 어느 철 다리를 건너다가 강둑에 모여 손 빨래질하는 무리를 발견한다. 도비 카스트. 세탁을 업으로 삼는 그들은 가장 천대받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보니 새삼 인도에 있음을 실감한다. 


유독 그들이 눈길을 사로잡는 건, 언젠가 보았던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때문이다. 인도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늘 그렇듯 그 마지막엔 슬럼가의 삶을 조명하고, 지난한 현실 속에도 그들은 소소한 행복에 감사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물질세계 속을 살아가는 우리를 돌아보자는, 이젠 마치 공식처럼 느껴지는 연출.


제작자의 의도대로 화면 속 도비들은 궁핍한 삶 속에도 카메라를 향해 해맑게 웃어 보인다. 웃을 수 있다는 건 그럼에도 행복하다는 것으로 그려진다. 욕심 없이 하루하루 기도하며 소소한 삶에 감사하니, 언뜻 내생을 기약하며 현생의 업에 충실해야 할 인도의 종교와도 궤가 맞아떨어지는 듯하다. 인도 탐방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꽤 그럴듯해 보이기도 한다. 때마침 진행자의 묵직한 내레이션이 흐른다.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단 생각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저들이 도비구나. 실제 도비와 마주친 건 처음이다. 현실과 다큐멘터리 속 장면이 교차한다. 하지만 현실의 그들은 미소 없이 처절한 몸짓으로 바닥을 향해 연신 세탁물을 내려칠 뿐이다. 빨랫감은 끝도 없이 쏟아진다. 반면 화면 속의 도비들은 해맑게 웃는다. 진행자가 묻는다. 

"아 유 해피?" 


순수한 그들에겐 낯선 방문자가 신기하고, 자신들은 보지도 못할 카메라에 찍히는 게 마냥 좋다. 그렇다고 더러운 물과 독한 세재에 온몸이 찌들며 가난과 배고픔을 견디는 삶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는다. 질문이 틀렸다. 그들의 삶이 진정 행복하다는 건지, 제작팀이 쥐어준 몇 푼 안 되는 돈을 받고 카메라에 찍히는 게 행복하다는 건지 분명치 않다. 순간 다리 밑으로 내려가 묻고 싶다.


당신들은 정말 행복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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