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로 떠날 사람들에게
인도로 떠난 사진가들
‘대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냄.’
사진에 대한 정의다. 하지만 여기엔 한 가지 설명이 부족한 점이 있다. 그 사진은 사진 찍는 사람의 눈을 거치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일 수도 있지만, 그대로가 아닐 수도 있다. 분명 바라보는 자의 시선은 사진과 대상 사이에 개입한다. 그래서 다시 정의하자면, 사진은 사진을 찍는 자의 눈으로 대상을 표현해낸 것이다. 특히 숙련된 사진가일수록… 그 시선은 강하게 작용할 것이다.
한편 사진가가 아니라도 인도로 떠난다면 반드시 지참해야 할 준비물이 사진기다. 사진이 존재하지 않던 시대라면 (옛 탐험가들처럼) 간단한 필기구와 자신의 기억에 의지하겠지만, 인도만큼 ‘포토제닉’ 한 곳에 사진을 빼놓는다면 아쉽다. 굳이 챙기지 않아도 소형 사진기 하나씩 품에 지니고 다니는 시대이기도 하다. 하물며 사진가에게 인도는 신선한 자극을 주는 대상이다. 앞서 ‘신비한 인도 만들기’에서 다뤘듯 문학, 음악, 영화… 등 대개의 분야처럼 사진가들 또한 영감을 쫓아 인도로 향했다.
먼저 프랑스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1908-2004년)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사진가인 로버트 카파(1913-1954년)와 함께 세계적인 자유 보도 사진가 그룹 ‘매그넘 포토스’을 설립한 그는 1948년 1월 델리로 향해 간디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게 되었다.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decisive moment)'을 쫓아온 그는 우연하게도 간디의 암살 전후 생전 마지막 모습과 장례식을 취재해 라이프지에 전송했다. 간디의 죽음은 인도를 넘어 전 세계인들이 슬픔에 잠긴 불행한 순간이었지만, 하늘이 점지한 운명이라고 할까, 동물적인 본능이라고 할까… 브레송은 보도 사진가로서 존재해야 할 때와 장소를 놓치지 않았고 스스로 늘 강조하던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해냈다. 그밖에도 그는 인도에 머물며 카슈미르 분쟁 지역 등을 취재하며 인도에 관한 여러 장의 인상적인 사진을 남겼다. 글의 서두에 소개한 사진인 <민속공연 ‘아리아인에 의한 난민’ 중에서(1947년)> 또한 당시 그가 포착한 인도의 단면이다.
미국의 사진가 매리 앨런 마크(1940-2015년)도 그랬다. 이미 말했듯 테레사 수녀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던 그녀는 광고 및 인물 사진 외에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더욱 유명하다. 반전 집회, 여성 인권 운동 등의 사진을 찍으며 점차 세상의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약자. 소수자, 소외층 등에 주목하던 그녀 또한 인도에 이른다.
세계의 아웃사이더들을 쫓던 그녀가 주목한 인도는 뭄바이 빈민가의 사창가였다. 인도의 뒷골목, 사창가는 어지간해선 현지인들도 범접하기 어려운 곳이다. 거부감이 심해 사진기를 들일 수 없을뿐더러 그 자체로 위험천만한 곳이라 인도를 아는 사람일수록 겁을 낸다. 그럼에도 끈질긴 노력으로 신뢰를 얻은 그녀는 ‘까방권’을 얻어 매춘부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냈다(자칫 진짜 까일 수도 있었다). 사진의 대상과 친밀해지고 진한 유대감을 맺는 것이 이 작가의 장기였는데, 그 장점이 십분 발휘되어 끝내 이해와 허용을 이끌어 냈다. 그 사진들이 세인의 주목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음은 물론이다. 사진의 비결에 대해 매리 앨런 마크는 단도직입적인 솔직함을 꼽았다. 사진을 찍는 의도를 솔직히 밝히고 진심으로 다가가 그들의 영혼을 조금 취한다는 것이다.
인도로 떠난 사진가라면 스티브 맥커리(1950-)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의 사진가로 '매그넘 포토스’의 일원인 그는 학창 시절 사진에 열정을 쏟다가 결국 프리랜서 사진가의 길을 걷게 되었고, 이후 다큐멘터리 사진을 추구하며 인도로 향하는데, 인도행은 그에게 일생일대의 전환점이 되었다. 이후 그는 인도와 아시아의 분쟁 지역을 오가며 ‘뉴욕 타임스’, ‘타임스’,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에 사진을 게재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고난 속의 인간상에 주목한 그의 대표작은 ‘아프간의 소녀’다. 그는 말하길, “만약 인내를 가지고 기다릴 줄 안다면, 사람들은 당신의 카메라를 잊을 것이고, 그들의 영혼이 당신의 시선 속에 떠오를 것이다.”라고 했다.
다만 여기서 논란이 생겼다. 있는 그대로의 장면을 포착하는 것이 다큐멘터리 사진의 생명인데, 일부 사진이 조작되었다는 의혹을 받으며 그 명성에 타격을 입은 것이다. 사진가는 의도하지 않은 실수였다고 해명했으나 책임에서 자유로워질 순 없었다. 물론 디지털 사진 시대에 사진 분야에 따른 보정 범위가 어디까진 되고 어디까진 안 되냐는 건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사진계의 논란이고, 인도에 대한 이야기라면 좀 다른 화두를 꺼내어 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논란과 함께 보니 사진 속 인도 사진은 매번 극적이다. 멋진 사진들임엔 분명하지만, 정말 그런 인도가 존재하는지 조금은 아리송해져 머리를 긁적인다. '내가 보지 못한 인도가 더 많으니까…' 다만 평소 일상 속에 목격한 인도는 좀 더 뿌연 안갯속에 미궁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소 낡고 색도 바랬다. 그런 의미에선 직접 빈민가로 들어간 매리 앨런 마크의 사진이 좀 더 진실된 것일까? 그러나 그 또한 인도의 일면이다. 그녀의 눈을 거친 인도이기도 하다. 외면하지 말아야 할 모습이지만, 자극적인 소재로 눈길을 끈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현실의 인도에선 그녀가 담아낸 빈민가까지 접근할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누군가는 가보지 않고도 가본 척하기도 한다. 또한 화려하거나 비참하거나 특이하거나 그것을 미화하거나 냉정하게 바라보거나 모두가 인도를 포괄하기엔 부족하다. 그럼에도 그 하나의 시선이 때로 인도의 모든 것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탁월한 시선을 가진 개인일지라도 인도를 보여주는 한 장의 사진이란 절대 존재할 수 없으니, 얼마나 다양한 시선, 풍부한 시선으로 두루 살피느냐에 따라 인도를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사진이 그렇듯 인도에 대한 해석도 바라보는 시각이 중요하게 개입한다. 어떤 곳을 어떻게 경험했냐에 따라 인도는 너무나도 다를 것이다. 세상의 다양함을 집대성한 듯한 인도는 참으로 그러기 좋은 곳이다. 그러므로 사진이 아닌 인도에 대한 시각이야말로 인내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며 균형감을 유지해야 한다. 실패한 자, 미워한 자, 그리고 무지한 자일수록 목소리는 더 크고 선명하다. 하지만 그 시각에만 현혹되면 더 많은 걸 보기 어려울 것이다.
모든 시각엔 의미와 무게가 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결정적인 순간의 인도를 보았고, 매리 앨런 마크와 스티브 맥커리가 본 것도 인도다. 다만 자신과 타인의 많은 시각과 경험을 모으고, 가능한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해야 인도의 윤곽이 드러난다. 자신 있게 ‘이것이 인도다’라고 단정하는 사람 중에 정말 인도를 아는 사람이 드물고, (부득이한 경우가 있지만) 인도를 요약한 건 결국 빈약해진다. 항상 거듭해야 할 질문은 인도는 어떤 곳이냐는 것이어야 한다.
인도로 떠날 사람들에게
인도로 떠난 내게도 어느 순간 위기가 찾아왔다. 기쁨과 환희였던 인도가 괴롭다. 인도도 예전과 다르지만, 그보단 인도로 떠난 내가 많이 변했다. 언제는 태몽이 점지한 곳이라더니… 바라보는 시선이 몹시 차갑다. 마치 인도는 인간 세상의 오류에서 빗겨나가야 한다는 듯 굴고, 매사 답답해하며 걸핏하면 비난한다. 알수록 난해하다. 더 질문해야 하지만, 더 알고 싶지 않다. 말문을 닫고 질문을 멈춘다. 그러면서 앞날의 기대는 더없이 크다. 내 인생의 거의 모든 것을 인도에 건다. 얼마간 혼탁했던 마음을 추스른 뒤에 자문한다. 과거의 찬사, 현재의 비난, 그리고 미래의 기대가 공존하는 그 인도는… 누구의 인도인가? 다시 아득해진 인도 앞에 잠시 멈춰 '인도로 떠난 사람들'에게 묻는다. 선배들은 좀 알 것 같다.
명부에 이름을 올렸으니 성공한 선배들이지만, 돌이켜보니 그들도 완전한 건 아니다. 알렉산더 선배님, 다 가마 선배님… 정복자와 침략자는 차지하기 위해, 구도자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탐험가와 여행자는 모험, 종교인은 선교를 위해 인도로 떠났다. 히피는 신비감, 예술가는 영감을 쫓아 인도로 떠났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인도로 향했지만, 바란 것을 온전히 이루고 차지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숱한 실수와 시행착오 끝에 발길을 돌린 자가 부지기수고, 무언가 성취했으나 그 업적엔 명암이 짙어 그때는 맞아도 지금은 틀린 경우도 많다. 존중하고 존경받는 이들도 있지만 철천지원수가 된 경우도 적지 않다. 차라리 인도로 향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인물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얼굴을 화끈거린다. 더 민폐를 끼치기 전에 발걸음을 돌려야 하는 건 아닐까… 물론 (어림짐작 빚대어 볼 순 있어도) 오늘날의 인도행을 과거와 완벽히 포개어 보기란 무리일 것이다. 인도로 떠난 사람들은 달라지고, 많아지며 다양해진다. 그들과 더불어 인도 역시 끊임없이 변해간다. 나란 한 인간이 인도라는 지도에 작은 좌표를 찍고 지운다 한들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다만 선배들이 나와 다른 건, 그들은 그 길을 끝까지 가보았다는 것이다. 성패를 떠나 포기하고 싶은 순간 그들에게서 힌트를 얻는다. 과오는 과오대로… 안도감도 든다. 그들도 완전치 못했듯 나도 그렇다. 불완전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직 결과가 아닌 과정이니 가능한 끝까지 가볼 일이다.
달리 보면 오늘의 인도란 결국 (인도인들과) 그곳으로 떠난 수많은 사람들의 꿈과 의지가 모여 지금에 이른다. 태몽을 운명 삼은 나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건 결국 어떤 꿈과 의지를 가지고 인도로 떠났던 날이다. 그렇게 인도에 첫발을 내린 순간을 여전히 오늘의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한다. 어쩌면 우리를 인도로 이끄는 건, 바로 그곳에 함축되어 있을 모두의 꿈과 의지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인도는 인간이라는 바지런한 쇠똥구리들이 오랜 세월을 굴린 거대한 덩어리, ‘꿈과 의지의 총합’과 같다. 그것이 있으니 흔들리던 나 역시 계속 그곳으로 향한다. 그리하여 지금 그렇듯, 현재가 과거, 미래가 현재가 되는 어느 날 또 누군가가 꿈과 의지를 가지고 인도로 향하고, 그것이 무수히 반복되며 사람들의 꿈과 의지는 계속 인도에 쌓여 갈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그것이 사람들을 인도로 이끄니, 인도로 떠난 사람들도 결국 윤회의 쳇바퀴처럼 인도를 중심으로 돌고 돈다. '인도로 떠난 사람들'은 그 흐름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그래서 만약 당신의 바퀴도 우연히 맞물려 인도로 향한다면, 앞서 떠난 그들이 꽤 괜찮은 나침반이 되어 주리라 믿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