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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채 May 24. 2019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느리지 않게

오름길

제주 용눈이 오름


능선을 따라 걷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고 날은 빠르게 저물어갑니다. 때마침 눈앞에 지름길이 보입니다. 마음은 조바심을 내며 묻습니다. 저곳으로 가로지를까?


아니야…

아무도 보지 않음에도 저는 보란 듯 크게 고개를 가로저어 봅니다. 

그랬던 적이 있습니다. 그 밤, 날이 새도록 걷고 싶었고, 그 사람, 언제나 함께 이길 바랐으며, 그 느낌, 오래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땐, 무엇에 그리 쫓겼는지 매사 걱정이 많고 마음은 급했습니다. 더 빨리 걸어야 할 것 같았고, 놓칠까 봐 전전긍긍했으며, 그 순간에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머지않아 숨이 가쁘게 차올랐습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한때 그게 타고난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누구와 무엇을 끊임없이 의식했을 뿐 결국 그건 진심이 아니었던 것을… 알겠습니다. 아마도 의식한 기대와 다른 나 자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젠 저를 포함해 그 누구와 무엇도 저곳으로 가로지르라 말하지 않습니다. 한없이 느긋해지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적당하게… 결국 너무 빠르거나 느린 건 좋지 못하니까.


제주 용눈이 오름


지름길을 지나쳐 능선을 따라 계속 걷습니다. 결국 차가운 바람을 피할 수 없고 밤은 깊어지겠지만,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걷고 싶을 만큼 걸어보려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럴 수 있다면, 

그땐 함께 머무르고 싶은 만큼 머물고, 순간을 놓치지 않길 바랍니다.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느리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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