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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채 Jun 12. 2019

네가 무얼 하든지

아이 없는 남자

강원 동해 어달


어느 해변, 아버지와 아들을 만납니다.

모래 장난치는 아이 곁을 지키며 아버지는 바다 저편 수평선을 바라보고, 그들 주위를 한 무리의 갈매기 떼가 맴돌고 있습니다. 물끄러미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상상합니다. 지금 저기 선 젊은 아버지의 마음은 무엇일까?


저는 아이가 없습니다.

어느덧 중년에 이른 지금은… 어쩌면 앞으로도 그럴 수 있겠다는 걸 조금씩 받아들여가고 있습니다. 무척 유감이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생각만큼 슬픈 일은 아닙니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살다 보니 그렇게 될 뿐입니다. 포기와 체념은 아닙니다. 선택이라고 말할 수 없어도 업과 윤회가 그렇듯, 그럴만한 원인에 따른 결과인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모든 과정이 이 길로 향하는 인과관계의 연속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슬퍼하는 것이야말로 제 자신을 부정하는 더더욱 슬픈 일이 될 것입니다. 삶의 획득이 있다면 그만큼 상실 또한 감내해야 하고, 그보다는 지금 앞의 생을 살아가야 할 듯합니다. 앞으로도 이어질 원인과 결과를 위해 말입니다.


누군가 그건 무척 슬픈 일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그게 다수의 생각일 겁니다. 누가 내놓고 ‘그래도 좋다’고 할 문제는 아니니까요. 성숙하지 못한 어른이 어쩌고, 나라의 미래가 어쩌고… 하지만 사회에서 일할 때도 독신이라고 싸게 먹혔듯, 아이 없는 어른도 배려 밖에 머문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렇다 보니 저도 모르게 타인의 눈길을 의식하고 위축될 때도 없진 않습니다. 하지만 슬프다면 스스로 슬퍼할 일이고, 다수의 생각에 슬픔을 강요받을 순 없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괜찮습니다.


다만 거리에서 부모와 아이의 모습을 보면 절로 미소가 번집니다. 물론 마냥 순탄해 보이진 않지만,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되겠지… 막연하게나마 생각했던 적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면 문득 상상해봅니다. 만약 저 아버지가 나라면 지금 어떤 마음일까? 사실 조금은 엄격하게 자라 아버지와 아들 간에 친근한 무언가를 상상하기에 조금 서먹서먹한 기분도 들지만(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많은 부자 관계가 그런 거니까요), 그래도 상상해봅니다. 아이가 없지만 그럼에도 만약 있다면, 떠오르는 말이 없다면 듣고 싶었던 말이라도…


아마 세상의 풍파와 금수의 부리로부터 아이를 지키며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는 응원한다. 네가 무얼 하든지…

너도 저 새들처럼 비상하렴.


.

.

.


아빠, 제발 오버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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