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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채 Jun 22. 2019

氣냐?

애쓴다

강원 고성


아침부터 원기옥을 모읍니다. 머리 위로 두 팔 벌려 손끝 가득 있는 대로 힘을 주고 온몸이 바들바들 떨릴 때까지… 그러다 고혈압이 생길 것만 같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거대한 에너지 파를 만들어야 합니다. 어느 만화처럼… 아, 초사이언이고 싶다.


그건 버릇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긴장되거나 간절히 바라는 일이 있으면 수시로 기를 끌어 모았습니다. 두 손을 가능한 앞으로 쭉 뻗어 장풍을 쏘기도 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니 믿거나 말거나 허공의 헛손질이었더라도 알 길 없습니다. 현실의 기란 상상과 다르니까요. 다만, 무언가 그토록 얼굴이 새빨개지고 온몸이 저릿해질 정도로 원하면… 안 될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물론 안 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타인의 마음이 그랬습니다. 처음 좋아한 친구 앞에 서서 아무 말 없이 두 손을 모아 얼굴을 붉혀보았지만, 상대는 ‘뭐야, 이 사람!’하며 고개를 돌릴 뿐이었습니다. 뜻대로 움직일 수 없었죠. 그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용써도 안 되는 일이 있구나. 기든 아니든 역시 마음은 말로 표현해야 아는구나…


차츰 그런 이치를 깨닫는 사이, 세상은 두 뼘의 손바닥에 움켜쥐기에 크고 복잡해져 갑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게 있다는 걸 하나씩 인정해 나갑니다. 기를 모아도 모두가 그를 좋아할 수 없고 모든 걸 바란대로 이룰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정점에 오른 신체 또한 내리막을 걷기 시작합니다. 알수록 고개를 숙인다니 기묘한 조화입니다. 기는 마치 해변의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갑니다. 부족한 기를 채우려 에너지 드링크나 홍삼액도 마시지만, 무리하게 힘을 주면 (필살기답게)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엄한 곳에서 붐-붐- 새어나갑니다. 더럽습니다. 기 좀 쓴다고 만만하게 여긴 적 없지만, 버거워지는 건 순식간입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순 없습니다. 전 비장의 기술을 연마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원기옥입니다. <드래곤볼>의 손오공이 북쪽 계왕에게 전수받은 최강의 필살기지만, 전 원래 혼자서도 잘합니다. 기체조나 요가를 따로 배울 필요도 없습니다.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번쩍 들고, 온몸의 출구를 막은 채 다시 한번 힘을 꽉 줍니다. 조금도 새어나가선 안 됩니다. 정신일도 하사불성. 그건 제 삶의 에너지, 생의 의지가 되어줄 것입니다. 


...


오후, 어느 한적한 해변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슬슬 걸으며 따가운 햇살에 달군 모래 위로 소금기 뛰 몸이 훈제될 즈음, 저어기 불어오는 파도소리 사이로 날 선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여기! 어서 빨리 가져와!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 가족이 모래사장에서 비치파라솔을 펴고 있습니다. 비수기라 주위엔 사람이 드물고 그들의 행동은 유난히 눈길을 끕니다. 급할 것도 없는데… 꼭 저럴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사람의 들뜬 기분이란 또 달라 뭐 그럴 수 있겠다 생각합니다. 여자는 마치 그린 위에 깃대를 든 캐디처럼 마음에 드는 곳을 콕 집어 비치파라솔을 들고 서 있습니다. 아마도 최대한 바다 가까이 펴고 싶은 모양입니다. 상상해봅니다. 햇살이 싫어 도망치듯 숨는 날도 있으니 항상 그런 건 아닐 텐데, 이 모든 게 임기응변일 듯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때입니다. 누군가 저를 지나쳐 바다를 향해 걸어갑니다. 너른 어깨 위로 무거운 무언가를 힘겹게 받쳐 들고… 순간, 전 두 눈을 크게 뜨며 일어나 말합니다.

원기옥이다!  

지나가는 그를 붙잡아 묻고 싶습니다. 당신도 기를 아십니까? 


전 매일 아침 원기옥을 모읍니다. 그 버릇의 덩어리로 하루를 살아갑니다. 비록 기가 세다고 할 순 없고, 알아갈수록 고개를 숙이게 되지만 그럼에도 용기를 냅니다. 생의 모든 의지를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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