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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채 Jun 27. 2019

탓이여, 쓰라

우주적 탓관

제주 애월 팩토리 스토리


부끄러운 얘기지만, 요즘 일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좀 했습니다.

그러면서 별의별 탓을 다했는데, 불편한 의자 탓, 책상 탓, 노트북 탓 등 소소한 작업 환경으로 출발해 슬슬 날씨 탓, 기분 탓, 숙면 탓을 하다가 점차 ‘탓’의 세계를 넓혀 사회 탓, 문화 탓, 경제 탓까지 한 뒤, 안드로메다를 향해 우주적 탓觀을 창시할 즈음… 결국 내 탓으로 돌아왔습니다. 제 탓이라면 성격 탓, 얼굴 탓, 뱃살 탓(?)도 있지만, 아무래도 이실직고 능력 탓을 해야 합니다. 많이 부족하구나, 아직 멀었구나…  


저라고 셀프 프로텍션 기능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한참 그런 생각을 하면 우울해지고 맙니다. 문득 지금 하는 일이 재미없게 느껴집니다. 슬슬 다른 걸 도전해봐야 하는 건 아닐까?

웃긴 건, 살며 가장 원하고 재밌는 일을 해보겠다고 시작한 것이 지금의 일입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취미가 일이 된 탓이라고도 합니다. 한 편으로 전 끈기를 탓합니다. 지난 일들을 돌이켜 봅니다. 그러니까 성인이 되어 전공을 택하고, 직업과 직장, 이후의 도전까지 적게는 3년, 5년 길게는 10년 단위로 무언가 변화를 꾀한 듯합니다. 그때마다 이젠 슬슬… 하며 다른 걸 찾았습니다.


물론, 평생 한 길을 가는 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자신의 길을 일찌감치 찾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이 곧 그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다만 제 경우는, 돌이켜보니 참 촐랑거렸다는 생각도 듭니다. ‘만약’이란 무의미하지만, 한 길을 묵묵히 끊임없이 추구할 때의 가치를 이제야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예술이든, 직장이든, 학문이든, 또는 사업이든 그럴 수 있다면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그렇다고 어디든 10년 개근하란 의미는 아닙니다. 아니라면 용감하게 바꿔야 할 때도 있습니다. 다만 큰 틀에서 무언가 일관성을 가져가는 건 중요한 듯합니다. 탓하지 않고 탓을 만들지 말고 저도 이젠 한 길을 가려합니다. 전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려고 합니다.


그래서 지난봄, 불과 얼마 전 작업을 마쳤지만 또 다음은 무얼 쓸까 고민하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글을 쓰지 않으면 백수 같은 느낌에, 게다가 천부적이지 못한 이상 꾸준히 쓴다면 나아지는 게 글이라 믿기에… 그렇게 서너 달이 흘러 여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컴퓨터 화면엔 제목만 다를 뿐 그렇고 그런 내용의 워드 창이 서너 개 동시에 띄워져 있을 뿐입니다. 오늘은 이것, 내일은 저것, 모레는 요것… 솔직히 가슴이 조여 차마 띄워놓지 못한 창이 세 개가 더 있습니다. 때마침 옆 동네 글쟁이가 조언합니다. 글이 어떻게 뜻대로 되나?


그 말에 잠시 안도감을 느낍니다. 제 탓입니다. 항상 빠르게 뭔가를 달성해야만 했던 관성이 아직 몸에 붙어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기계일 수 없고, 기계가 인간의 글을 쓸 수 없는 한, 천천히 제대로 된 무언가 나오기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조바심을 내어서 될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체념하듯 말합니다. 그래, 일단 쓰고 보자.


잠시 쓰고 있던 워드 창을 모두 닫습니다.

대신 웹브라우저를 열고 단골 온라인 마켓의 장바구니로 가 결제 창을 엽니다.

책상과 의자를 바꾸고, 노트북을 바꿉니다. 이참에 카메라도 바꾸고 스쿠터도 한 대 들이면…

곧 기분이 좋아지고 잠도 잘 올 겁니다.

그리고 안드로메다로 가겠죠.


하릴없이 열어놓은 워드 창 31쪽, 9번째 줄

그분이 말씀하십니다. 쓰라. 카드를 쓰라.


잘 알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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