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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채 Apr 25. 2018

바라나시의 연


나룻배가 떠있는 곳.

사공이 노 저어가자 하얀 포말이 일고, 저기 저쪽의 아스라한 지평선은 안개 같은 연기에 잠겨 보일 듯 말 듯, 내 마음도 알듯 모를 듯 그곳에 이끌린다.  


처음 바라나시로 향할 때 그곳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었다.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힌두교 일곱 성지 가운데 하나라고 그랬다. 마치 좋은 사람이니까 꼭 한 번 만나보라는 것처럼… 화장터가 있어 영혼이 이탈한 육체를 끊임없이 태운다는 것은 그곳에 이른 다음에야 알게 되었다. 시바 신의 도시라 죽음에 앞서 죄를 사해주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죽음에 이른 사람들은 생애 마지막 여정으로 삼는 곳이라는 것도 그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 처음 목격한 건 오랜 도시의 미로와 같은 골목들과 그 속을 정처 없이 떠돌던 수많은 인도 사람들이었다. 아직 강엔 이르지도 못했는데, 인파의 물줄기가 사방으로 물결치고 있었다. 온갖 잡동사니를 파는 상점들도 즐비했다. 식당이나 숙소보다 눈길을 끄는 건 그런 상점들이었다. 여러 가지 순례 용품을 파는 곳 주위로 번쩍번쩍 금빛이 감돌아 절로 눈이 돌아갔다. 그곳엔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장신구가 놓여 있었다. 성소를 찾은 사람들의 설빔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특히 여성들은 결혼식을 빼면 아마 생애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스스로를 치장하고 있었다. 죽음이 가득한 곳이지만 삶의 환희로 빛났다. 그곳에선 죽음의 다른 말이 새로운 삶이라고 했다.  


하지만 곧 그곳이 죽음의 도시란 걸 실감했다. 길가엔 수행자와 순례자 외에 병자와 구걸하는 거지들이 가득했다. 아름답다, 화려하다고만 할 수 없는 풍경이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줄곧 공기가 무겁다고 느꼈고, 나는 어쩐지 두려움에 떨었다. 누군가 내게 두 가지 알약을 내미는 듯했다. 길의 이쪽과 저쪽, 미로와 같은 골목의 갈림길 앞에서 여러 번 갈등했다. 


길을 잃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서성이던 때였다. 골목을 따라 한 줄기 행렬이 지나갔다. 람을 외치거나, 신상이나 시체를 이고 지나가는 행렬이었다. 연이어 나타난 행렬은 의존적인 제 마음속에 화살표를 그어주었다. 그들의 뒤를 따라가기로 했다. 어쩐지 그렇게 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러자 골목이 열리고 강변으로 이어지는 가트가 보였다. 비로소 바라나시의 갠지스(강가) 강변에 이른 것이다.

 

영혼이 두고 간 육신의 연기들이 화장터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시바 신 앞에 화장될 차례를 기다리는 시체들이 은행의 대기자들처럼 가득했다. 거리에 차오른 안개와 밀도 높은 공기의 실체도 비로소 이해되었다. 이곳에선 죽음이 곧 삶이었다. 화장터와 떨어진 다른 한 편에서는 강에 몸을 담고 강물을 머금으며 멱을 감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런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관광객과 뛰어노는 아이들도 많았다. 이런저런 모든 사람들이 모인 만큼 호객꾼들도 많았다. 보트 투어를 권하는 호객꾼들이 가장 질겼다. 구걸하는 아이들의 손동작도 꽤 집요했다. 이미 두려움 가득했던 제 심장은 요동치고 있었다. 가만히 버티기도 어려운 그런 풍경 속에 너무 당연한 듯 생과 사의 모두가 그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바라나시에서 내가 보았던 건 무엇일까… 누군가 인도가 신비하다고 말한다면 바라나시는 그 신비함의 메카였다. 가장 특별하면서도 가장 인도다운 곳이었다. 반면 인도의 한계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가장 낡고 오래된 그곳은 이들이 종교적 삶의 숙명과 집착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가장 놀랍고도 노골적인 곳이기도 했다. 세상을 모두 경험하지 못했으나, 만약 경험한 가장 기묘한 곳을 꼽으라면 바로 이곳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한 가지 보았던 건, 뿌연 공기 속을 날리던 바로 그 연(鳶)이었다. 길게 이어진 가트를 거닐다가 어떤 소년과 마주쳤다. 평소의 아이들이 손부터 내미는 것과 달리 이 소년은 미소를 머금으며 연을 날리고 있었다. 그 연은 강가의 얄궂은 바람에 휘날려 꼬리를 떨어댔다. 미묘한 기류 속에 흔들리던 그 연은 연보(일생의 기록)의 '연'이었을까, 생사를 이은 '연'이었을까 혹은 사람과의 인연을 뜻하는 '연'이었을까? 


어쩌면 바라나시의 연이란 그 모든 것을 의미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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