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굿모닝인천 4월, Vol. 340
청춘은 아프다. 장애가 있는 청춘은 더 많이 아프다. 차이를 인정하기보 다는 차별적 시선을 던지는 세상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삶의 거친 파도에 당당하게 맞서는 이들을 만났다.
글 최은정 본지 편집위원│사진 김대형 자유사진가
구족화가 임경식(45) 씨의 화실. 화가는 입에 문 기다란 붓 끝에 팔레트의 붉은 물감을 톡톡 찍는다. 붓을 문 입술에 꽉 힘을 주어 캔버스에 ‘붉은 점 하나 콕’. 그러기를 수십 번. 어항을 탈출해 날아오 른 금붕어의 비늘 하나가 완성된다.
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1997년 가을밤, 체육 교사를 꿈꾸던 스무 살 청년은 교통사고로 전신마 비가 됐다. 절망과 분노가 오랫동안 야생동물의 발톱처럼 그를 할퀴었다. 발버둥 쳤지만 마비된 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13년 동안 집에만 있었어요. 살아 있지만 죽은 사람처럼 세상과 단절한 채.” 경제적 부담, 돌봄, 그를 지켜내는 일은 오롯이 가족의 몫이었다. 이미 4년 전 뇌졸중으로 장애를 얻 은 어머니는 불편한 몸으로 ‘다 큰’ 아들을 수발했다. “어머니가 한없이 불쌍하고 처량해 보였어요. 그래서 해서는 안 될 말을 했어요. 죽여달라고.” 그런 아들에게 돌아온 말은 “사랑해, 내 아들.”
어느 날, 어머니에게 커튼을 열어달라고 했다. 옅은 햇살 아래 먼지 쌓인 책상, 연필, 옷걸이… 모두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연필을 입에 물고 삐뚤빼뚤 아무거나 그렸다. 그림을 그리며 생채기 난 마음 한가운데 새 살이 돋았다. 하 루에 8~9시간씩 그림에 몰두했다.
세상 밖으로 나온 지 1년 만에 구족화가 초대전에 그림 한 점을 걸었다. ‘잘 걸 어왔구나.’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속절없는 시간 앞에 30대 중반이 된 그는 비 로소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자신을 미워하지 않게 됐다. 몸은 휠체어를 벗어날 수 없지만, 그림은 자유로운 세상으로 한없이 나아갔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버 지도 ‘화가 아들’을 뒀다며 ‘그림 조수’를 자처했다.
그의 그림에 세상이 반응했다. 2013년 여름, 미추홀도서관 초대로 첫 개인전을 열게 됐다. 가장 넓은 벽에 2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그린 ‘천국 가 는 길’을 걸었다. 하늘나라에서 그를 지켜볼 어머니를 위해.
요즘엔 거북이를 주로 그린다. “조금 느려도 거북이처럼 이 길을 꾸준히 가는 게 제 소망입니다. 사람들에게 제 그림이 위안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단 한 명 만이라도 희망의 깃발을 발견하길 바라봅니다.” 바퀴를 부드럽게 밀며 다가오 는 그의 휠체어 뒤에 파란색 깃발이 펄럭이는 것 같았다.
속절없는 시간 앞에 30대 중반이 된 그는
비로소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자신을 미워하지 않게 됐다 몸은 휠체어를 벗어날 수 없지만,
그림은 자유로운 세상으로 한없이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