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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모닝인천 Apr 02. 2022

아무도 울지 않는 밤 -3-

옴니버스 소설 | 굿모닝인천 4월, Vol. 340

깊은 밤을 날아서

글 안보윤 │ 일러스트 송미정





어휴, 진짜 못생겼네. 동현은 저도 모르게 큰소리를 냈다. 편의점 앞에 앉아 있는 고양이를 향해서였다. 몸통에 검은 얼룩이 듬성듬성 찍힌 고양이는 머리통이 깜짝 놀랄 만큼 컸다. 찹쌀떡 같은 걸 무심코 밟았을 때처럼 얼굴이 판판하고 코가 납작했다.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던 편의점 직원이 동현을 돌아보았다. 못났다, 참 못났어. 그렇게 중얼거리며 동현은 빠르게 편의점 앞을 지나쳤다. 사실 못생긴 건 길고양이 같은 게 아니었다. 질투와 시기, 원망으로 가득 차 불콰해진 얼굴의 동현만큼 못생긴 존재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듯했다.

집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동현은 이삿날까지 꼭 한 달 남은 자신의 월셋집을 떠올렸다. 집주인은 주변 다세대주택들을 모두 헐어 병원 건물과 주차타워를 만들 거라고 통보해왔다. 동현은 일대 건물이 모두 집주인 소유라는 사실과 집주인 아들이 의사라는 사실을 고작 보름

전에 알게 됐다. 완전한 타인의 일이었으나 그 타인의 일로 당장 집을 비워줘야 할 사람은 동현뿐만이 아니었다. 동현은 떠밀리듯 거리로 나왔다. 더 좁고 더 낮은 길을 찾아 걸었다.     

“동서남북, 어느 쪽이요?”

부동산 중개업자가 크게 하품을 하며 벽에 붙은 지도를 가리켰다. 인근 구역이 납작하게 압축된 평면도를 동현은 골똘히 살펴보았다. 이렇게 집이 많으니 하나쯤은 나를 위한 집도 있지 않을까. 동현은 망설이다 남향집,이라고 답했다. 가능하면 남향집으로요.

“아니, 그런 거 말고.”

중개업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말했다.

“이 동네 처음 와봐요? 여긴 동서남북 각각의 정체성이 완전히 달라요. 집 구할 돈이 충분하다 그러면 남쪽의 신축 아파트 단지. 집 구할 돈이 빠듯하다 싶으면 서쪽 구옥들. 보증금만 간신히 있다, 이건 동쪽 원룸촌. 손에 쥔 게 동전밖에 없다, 요건 북쪽 판자촌. 예산에 따라 구역이 달라지거든요.”

그러고 보니 지도에 X 자처럼 구획선이 그어져 있었다. 지도 남쪽에는 큼직큼직한 사각형에 번지수가 여유롭게 쓰여 있었으나 북쪽에는 구분하기도 어려울 만큼 작은 도형들이 빼곡했다. 번지수를 나타내는 숫자들 역시 어지러이 겹쳐 있어 읽기 힘들었다. 동현의 시선이 지도 북쪽에 오래 머물렀다.

동현은 중개업자와 함께 높은 지대의 집들을 둘러보았다. 동현의 예산에 가까울수록 집에 스미는 빛의 면적이 줄어들었다. 네 번째로 본 집은 집 안에 묵직하게 고인 습기와 어둠이 발에 차일 만큼 진득해져 있었다. 언덕 꼭대기 집인데도 빛 한 줌 고이지 못할 만큼 구조가 기이했다. 몇 집 더 가보죠. 땅딸막한 키의 중개업자가 지친 기색도 없이 골목과 계단을 오르며 말했다.

“내가 이 동네 토박이인데 젊었을 때 고생 숱하게 했어요. 북쪽에서 시작해 서쪽, 남쪽으로 이사하는 데 이십 년이 꼬박 걸렸지. 북쪽 집들이 겉으론 볼품없어 보여도 이 꽉 물고 돈 모으기에 이만한 데가 없어요. 손에 쥔 게 동전밖에 없다, 그건 결국 주먹 불끈 쥐고 산단 얘기잖아요? 젊은 사람이니까 좀만 열심히 살면 남쪽까지 금방이에요, 금방.”     

격려해주는 말이었으나 동현에게는 잘 와닿지 않았다. 지금껏 열심히 살았는데. 동현이 하고픈 말을 삼켰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외국어와 자격증 공부를 하고 오전 7시 반까지 회사에 출근해 잔업에 야근까지 빠짐없이 임하고, 퇴근한 뒤에는 부업 삼아 외주 받은 일을 두세 시간씩 더했다. 그뿐인가, 주말마다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연인은커녕 친구 한 번 못 만나고 살았다. 입사한 이래로 꼬박 5년이 그런 식이었다. 동현은 자신이 필사적으로 움켜쥐고 있는 게 고작 동전 몇 개일 뿐이라면 허공에 주먹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동현에게 있어 집은 늘 타인의 것이었다. 자취를 시작한 스물두 살 때부터 지금까지 동현은 늘 타인의 집을 떠돌며 살았다. 벽지와 전등, 화장실 타일까지 타인의 취향이 밀도 높게 채워진 공간이었다. 뭔가를 고치거나 떼어낼 때도 타인의 허락이 우선이었고 머물거나 떠나는 일정 역시 동현이 정할 수 없었다. 이사를 거듭할수록 동현이 머무는 곳은 바닥이 좁아지고 벽이 얇아졌다. 열심히 살수록 더 빠른 속도로 변두리로 밀려나는 것만 같았다.      

벌써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동현은 내일 다시 집을 둘러보겠다고 말했다. 서둘러 계약하지 않으면 가격대 좋은 집은 남들이 다 채가요. 중개업자는 몇 번이나 으름장을 놓은 뒤 돌아갔다. 가파른 언덕길을 타고 한참 내려가자 아까 지나친 편의점이 나왔다. 맥주를 한 캔 마실까. 4캔에 만원이니까 그걸 4일에 나눠 마시면 숨을 좀 돌릴 수 있지 않을까. 편의점 문을 밀고 들어서려던 동현이 그 자리에 멈췄다. 편의점 뒤편으로 죽 늘어선 아파트와 마주친 탓이었다. 높고 곧은 건물들이 창문마다 노랗고 하얀빛을 내뿜고 있었다. 저기엔 철판을 용접해 만든 단단한 문틀에 귀퉁이가 딱 맞는 현관문이 달려 있겠지. 수압이 일정하고 소음도 적고 창문 앞은 틀림없이 환하겠지. 동현은 한 치의 뒤틀림도 일그러짐도 없는 사각형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그곳은 동현이 방금 지나온 곳과 완전히 다른 세계 같았다. 적어도 동현에게는 아주 멀게만 느껴졌다.

야옹. 작은 울음소리에 동현이 옆을 돌아보았다. 편의점 에어컨 실외기와 나란한 위치에 종이상자가 놓여 있었다. 동그랗고 커다란 구멍을 뚫어놓은 상자 속에 얼굴이 넓적한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고양이는 여유롭게 앞발을 핥다 말고 야옹, 하고 울었다. 상자 바닥에 깔린 도톰한 담요가 아늑해 보였다. 동현은 고양이와 고양이를 감싼 사각형 집을 번갈아 보았다.

“너도 집이 있구나.”

동현이 고양이를 향해 중얼거렸다.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지도 완전히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그저 중얼거리고만 있었다. 너도, 너에게도 네게 꼭 맞는 집이 있구나. 해가 완전히 사라진 골목 끝에서 밤이 시작되고 있었다. 길고 깊은 밤이었다.





안보윤 | 1981년 인천 출신. 2005년 장편소설 <악어떼가 나왔다>로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자음과모음문학상 수상. 소설집 <비교적 안녕한 당신의 하루> <소년7의 고백>, 장편소설 <오즈의 닥터> <사소한 문제들> <우선멈춤> <모르는 척> <밤의 행방>, 중편소설 <알마의 숲>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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