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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모닝인천 Mar 17. 2022

아무도 울지 않는 밤 -2-

옴니버스 소설 | 굿모닝인천 3월, Vol. 339


부드러운 말과 밤

글 안보윤 │ 일러스트 송미정




지금이라면 세상 모든 사람을 저주할 수 있겠어. 유영은 숨을 몰아쉬며 생각했다. 해가 기울어 골목 끝이 검게 지워져 있었다. 시멘트 담과 그 위로 뻗은 배롱나무 가지 끝을 어둠이 덥석덥석 집어삼켰다. 유영은 좁은 골목과 길모퉁이를 돌아 빠르게 달렸다. 사위가 어두워 여러 차례 넘어질 뻔했으나 멈추지 않았다. 차고 축축한 바람이 그늘진 마음속을 온통 휘돌고 있었다.

엄마와 말다툼한 건 오랜만의 일이었다. 엄마와 사이가 좋아서라기보다 그간 엄마가 너무 바빴기 때문이었다. 유영은 엄마와 마주 앉아 밥을 먹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전부 오빠 때문이었다. 오빠가 돌연 피겨스케이트 선수가 되겠다고 선언한 건 3년 전이었다. 처음엔 엄마도 아연실색해 오빠를 말렸다. 취미로 스케이트를 해왔다지만 오빠는 벌써 열다섯 살이었고, 빠르면 서너 살부터 피겨를 시작하는 사람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늦은 시작이었다. 그러나 오빠가 전신 쫄쫄이를 입고(그런 건 대체 어디서 구했담!) 거실에서 펄쩍펄쩍 점프를 뛰기 시작하자 엄마는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유영의 오빠는 두 팔을 둥글게 벌린 채 도움닫기 해 높이 솟아올랐다. 1회전, 1회전 반, 2회전에 가닿지도 못한 채 바닥에 나동그라지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오빠는 일어나서 뛰고 또 뛰었다.

꿈을 정한 건 오빠였지만 그날 이후 가족의 모든 일상이 바뀌었다. 훈련 가능한 빙상장은 유영의 집에서 한 시간 반 거리였고, 엄마는 매일 오빠를 데려다주고 데려왔다. 오빠가 훈련하는 동안 두꺼운 패딩점퍼를 입고 종일 빙상장에 머물렀다. 대회가 잡히면 심야훈련이 더해져 집에 돌아오지 않는 날도 많았다. 덕분에 유영은 이곳저곳을 떠돌았다. 할머니 댁에 며칠씩 머무는 날이 많았고 방과 후엔 공부방과 영어학원, 피아노와 논술학원을 번갈아 다녔다. 그런데 오늘 엄마가 어쩐 일로 집에 있었다. 유영은 당장 엄마에게 달려갔다. 그때만 해도 유영은 다만 엄마가 반가웠고, 오빠가 집에 없는 게 기뻤다.

“유영아, 만두 보러 온 거야?”

유영이 흠칫 놀라 멈춰 섰다. 어느새 사거리 편의점까지 달려 나온 모양이었다. 작은 상자 앞에 쪼그려 앉아 있던 민서가 손을 흔들었다. 상자 안에는 지난겨울부터 편의점 앞에 살게 된 길고양이 왕만두가 있었다. 이름과 딱 맞게 얼굴이 유난히 크고 넓적한 고양이였다. 유영은 민서 옆에 쪼그려 앉았다. 너무 빨리 달려서인지 다른 이유에선지 숨이 뒤엉키며 어깨가 떨렸다.

만두를 쓰다듬으려 손을 뻗다 유영은 조금 움츠러들었다. 손끝이 차고 뻣뻣해 만두가 깜짝 놀랄 것만 같았다. 머뭇거리는 낌새를 알았는지 만두가 유영의 손등에 커다란 얼굴을 맞대어왔다. 까맣고 통통한 꼬리를 흔들어 유영의 팔뚝을 어루만졌다. 그러자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유영은 집을 뛰쳐나오기 전 엄마에게 쏟아부었던 말들을 떠올렸다. 엄만 오빠밖에 몰라. 엄만 사실 내가 싫은 거지? 내가 공부도 못하고 오빠처럼 재능도 없으니까, 나처럼 쓸모없는 애는 신경도 쓰기 싫은 거야. 그렇지? 근데 엄마만 싫은 거 아냐. 나도 내가 정말, 정말 싫어! 그러나 유영은 알고 있었다. 화가 나서 새빨개진 유영의 얼굴과 달리 엄마 얼굴은 슬프고 고통스러워 보였다. 엄마가 뻗어온 손을 유영은 세차게 밀어냈다. 어떤 의심도 없이 호의 섞인 온기를 전해오는 만두와 달리 자신의 말과 행동은 하나같이 차고 날 서 있었다. 유영이 숨을 고르는 동안 민서는 잠자코 옆을 지켜주었다. 어깨의 들썩거림이 어느 정도 잦아들자 민서가 말했다.

“근데 만두가 아픈가 봐. 좋아하는 간식을 안 먹어.”

“…… 물을 마시고 싶은 거 아닐까?”

유영이 바짝 마른 만두 코를 가리키며 말했다. 편의점 안으로 들어간 민서가 물그릇 가득 깨끗한 물을 떠 왔다. 내내 웅크려 있던 만두가 부스스 몸을 털더니 물그릇을 얼른 핥았다. 찹찹찹찹 물 마시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자 민서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유영이 너는 이런 거 참 잘 알더라. 관찰력이 좋은가 봐. 지난번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도 우리 강아지 다리가 아픈 거 같다고 했었잖아. 나는 걔가 총총대며 걷는 게 마냥 귀여웠거든. 근데 네 말 듣고 병원에 가보니까 다리가 아파서 절뚝이는 거라지 뭐야. 정말 깜짝 놀랐어.”

“그건 그냥 우연이야.”

“아냐, 내가 울적하거나 화나는 일이 있을 때도 네가 제일 먼저 알아채잖아. 너는 관찰력이 좋고 섬세하고 무엇보다 다정해. 유영이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선생님이면 좋겠어. 아니다, 심리상담가가 돼서 자기가 아픈 줄도 모르는 사람을 고쳐주는 것도 멋있겠다. 동물을 좋아하니까 수의사도 어울리겠고.”

민서가 한껏 들뜬 목소리로 덧붙였다.

“유영이 넌 정말 뭐든지 될 수 있겠다, 부러워.”

유영은 그 말들이 겸연쩍으면서도 기뻤다. 마음속에 납작하게 밟혀 있던 무언가가 솜사탕처럼 조금씩 부푸는 기분이었다. 저런 말을 나도 할 수 있을까. 유영은 손안 가득한 온기와 마음속 가득한 다정한 말들을 조심조심 어루만졌다. 상처 주고 상처 입는 말이 아니라 보듬고 안아주는 말. 유영은 그런 말을 듣고만 싶어 했지 한 번도 엄마나 오빠에게 건네본 적이 없었다.


몸을 일으킨 유영이 자신이 달려 나온 골목을 돌아보았다. 캄캄했던 골목에 가로등이 켜져 둥글고 흰빛이 가득했다. 가볍게 부푼 따뜻한 말들, 상냥한 기운으로 가득한 봄바람. 유영은 뺨을 스치는 바람에 비로소 봄이 왔음을 실감했다. 유영 마음속에서도 무언가가 겨우 싹을 틔우고 있었다. (*)






안보윤 | 1981년 인천 출신. 2005년 장편소설 <악어떼가 나왔다>로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자음과모음문학상 수상. 소설집 <비교적 안녕한 당신의 하루> <소년7의 고백>, 장편소설 <오즈의 닥터> <사소한 문제들> <우선멈춤> <모르는 척> <밤의 행방>, 중편소설 <알마의 숲>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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