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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모닝인천 Nov 07. 2022

LP판처럼 느리게 돌아가는 동네, 신포동

골목 TMI | 굿모닝인천 11월, Vol. 347

골목을 걷는 것은 동시대를 기억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이다. 그 안에 우리네 삶의 오늘과 내일, 어제가 있다. ‘골목길 TMI’는 골목의 새로운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다. 이번 호에선 수천 장의 LP를 보유한 음악 카페 주인장과 그곳을 특별히 좋아하는 오래된 단골들을 만났다.

글 최은정 본지 편집위원│사진 유승현 포토 디렉터   

  

신포동 음악 클럽의 역사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전쟁 이후 숭의동에 자리한 다국적군은 고향의 음악을 듣기 위해 신포동을 찾았고 골목마다 재즈, 블루스, 컨트리음악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나라 1세대 밴드 ‘키보이스’를 결성한 김홍탁, 한국 최초 록 그룹 ‘애드훠’의 김대환 같은 쟁쟁한 뮤지션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1980년대까지 30여 곳에서 ‘디지털 음원’이 아닌 ‘진짜 음악’이 흘러나왔다. 시절은 변했지만 신포동은 그 시절 LP판을 들으며 청년기를 보낸 ‘올드 보이’와 세대를 넘어 음악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숨겨 놓은 아지트다. ‘흐르는 물(since 1989)’, ‘버텀라인(since 1983)’, ‘탄트라(since 1979)’··· 오래된 음악 카페에서는 여전히 오래된 명곡이 마음을 도닥인다. 

    

인천 최초·대한민국 3대 재즈 클럽, 버텀라인

세월을 머금은 나무 계단을 밟고 2층에 올라 두꺼운 나무 문을 열자 음악이 확 안겨든다. 깊은 울림이 귀를 넘어 가슴으로 파고든다. ‘좋다….’ 과연 대한민국 3대 재즈 클럽이라는 명성에 걸맞다. 

버텀라인은 1983년에 문을 연 인천 최초의 재즈 클럽이다. 1900년대 초에 지어진 일본식 목조 건축과 높은 천장, 단아한 무대에서 역사와 기품이 느껴진다. 허정선(56) 대표는 “라이브에 최적화된 공간이에요. 높은 천장과 흙벽이 소리를 깊이 있게 만들어주고, 그 울림이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되니 뮤지션과 관객이 혼연일체가 되는 무대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1세대 재즈 피아니스트 신관웅을 시작으로 그간 김광민, 웅산, 윈터플레이 등 실력 있는 뮤지션이 무대에 올랐다. 해외에도 알려져 프랑스의 ‘국민 베이시스트’ 앙리 텍시에 같은 거물 연주자가 연락을 해와 공연이 성사되기도 했다. 

라이브 공연이 열리는 토요일 저녁, 사람들이 하나둘 포근한 소파에 몸을 파묻고 재즈 선율에 빠져든다. 피아니스트의 손끝에서 날아오른 음표가 바닥을 가로질러 다가와 보드라운 손을 내민다. “음악은 흩어지는 게 아니라 어느 시간 속으로 나를 데리고 가잖아요. 생생하고 자연스럽게. 그게 음악의 힘인 것 같아요. 다음 주인이 누가 되든 50년, 100년 후에도 이곳에서 재즈가 흘러나오고 있으면 좋겠어요.”

 LP판이 파문을 새기면 깊은 울림이 귀를 넘어 가슴으로 파고든다.

인천시 중구 신포로23번길 23 | 032-766-8211     


송석철(58) 재즈 피아니스트

연주자에게는 태산 같은 시간을 쌓아야 눈곱만큼의 재미가 허락된다. 그렇게 숙련한 음악으로 관객과 교감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완전한 교감. 그 순간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무대에서 싱긋싱긋 웃게 된다. 그리하여 온 세상이 미소 짓는다.

버텀라인은 믿고 공연할 수 있는 곳이다. 뮤지션은 마음껏 잘난 척할 수 있고, 관객은

재즈의 숨결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이런 귀한 공간과 에너지는 절대 하루아침에

만들어낼 수 없다. 버텀라인이 100년을 가야 하는 이유, 100년을 가리라 믿는 이유다.     


    



세계적인 명곡 가득한 음악 카페, 탄트라

붉은 벽돌벽에 빨간 천막을 머리에 얹은 오래된 건물이 가을밤을 밝힌다. 탄트라는 신포동 음악 카페의 맏형답게 1979년부터 한자리를 지켰다.

지금 주인장 김국용(60) 대표는 2대 사장이다. 1995년, 그의 나이 서른세 살에 탄트라를 맡았다. “제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어요. 1980년부터 자주 왔는데, ‘탄트라 사장’이 제 꿈이었어요.”

학생 시절부터 이글스, 스모키, 딥 퍼플 등의 록 그룹을 좋아해 그들의 음악을 끼고 살았다. 외국 팝 가수들의 ‘빽판’을 사 모았고, 20대 때는 음악다방 DJ를 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다. 덕분에 이곳엔 팝, 재즈 블루스, 록 등 다양한 장르의 명곡 LP판이 가득하다.

“많은 분이 ‘음악으로 힘을 얻는다’고 하세요. 제가 마음을 고치는 의사가 된 것 같아요. 마음이 무거운 날, 신포동의 빨간 지붕을 찾아 들어와 보세요.” 그의 말처럼 음악은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부드럽게 용서하고, 감동시킨다. 음악이 있으면 발걸음이 리듬이 된다.

1979년부터 한자리를 지킨 탄트라
‘빽판 키즈’ 김국용 대표. 20대 때 음악 DJ를 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다

인천시 중구 신포로27번길 23 | 032-762-8786     


노승환(45) MBN 기자

탄트라의 음악은 어딘지 뜨겁거나 따뜻하다. 올 때마다 ‘나는 아직 온전하다’ 생각한다. 세상 가차 없고, 사람은 내 맘 같지 않다. 그렇게 휘청휘청 와 앉으면 ‘내 아직 멀쩡하구나’ 한다. 그 감지덕지가 육감 중에 따뜻한 게다. 뜨거움은 음악 때문이다. 거대한 스피커는 JBL이요, LP로 흐르는 음악은 아날로그 전성기의 일절 상투적이지 않은 선곡이다. 볼륨은 좀 크다. 음색이 차가울 리 없고, 이어폰 따위 비할 바 아니다.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지만 누구에게나 작은 대피소 정도는 필요하다. 탄트라의 붉은 지붕 아래 작은 테이블 하나면 나에겐 충분하다.     


    



무수한 음악과 역사가 흐르는, 흐르는 물

정희성의 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의 첫 구절인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를 줄여 간판을 단 음악 클럽 ‘흐르는 물’은 포크송이 흘러나오는 감성적인 공간이다. 감미로운 선율이 흐르는 공간엔, 시인이자 뮤지션 안원섭(62) 대표가 평생 모은 LP판 5,000여 장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1989년 클럽 문을 열었다. “예술을 사랑하는 인천 지역 청년들이 자주 찾아왔어요. 화가, 작가, 음악가, 시인, 기자 등 다양한 예술가와 청춘을 함께했죠.” 시인에게는 커피값 대신 시집을, 화가에게는 술값 대신 그림을 받기도 했다. 그 시절부터 무수한 사람들이 흐르는 강물에 슬픔도 함께 씻어버렸으리라.

흐르는 물은 정기적으로 하우스 콘서트를 개최하며 인천의 공연 문화를 이끌고 있다. ‘타악기의 대가 흑우 김대환’, ‘들국화의 조덕환’, ‘포크의 전설 양병집’… 한국 가요계의 한 획을 그은 이들은 모두 공연을 펼친 이력이 있다.

“인천은 음악 도시입니다. 등 굽은 소나무가 고향을 지키듯이 신포동에 오래도록 남아 인천의 문화를 지키고 싶습니다.”

‘음악 도시, 인천’에 뿌리 내린 큰 나무, 안원섭 대표

인천시 중구 우현로39번길 19 2층 | 032-762-0076     


김종하(56) 문화예술 감독

흐르는 물에는 신포동의 가장 빛나던 시절이 알알이 살아 있다. 이름처럼, 늘 음악이 흘렀고, 턴테이블 위를 천천히 돌아가는 LP의 선율은 풍부하고 따뜻했다.

1980~1990년대 인천에서 음악이나 문학을 하는 멋쟁이들이 단골이었다. 좋은 음악이 있었고, 섭이 형(안원섭 대표)은 늘 인천 문화예술인을 환대해 줬다. 술 한잔에 예술과 삶에 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며 청춘을 함께했다. 지금도 많은 예술가가 이곳을 찾는다. 그는 언제나 우리에게 포근한 나무 그늘이 되어주는 사람이다.     

     




DJ가 사연 읽어주는 음악 카페, CCR

“오늘 씨씨알 뮤직 살롱의 첫 번째 신청곡입니다. 이문세의 ‘소녀’.” LP판이 빼곡히 들어찬 부스에서 사연 읽어주는 DJ가 손님을 반긴다. 감미로운 목소리를 따라 시공간을 거슬러 1970~1980년대 동인천역 부근 작은 음악 감상실로 간다.

“40년 전만 해도 이 일대가 중심이었어요. 화려했어요. 동인천역과 신포동 일대에 음악다방도 많고, DJ도 많았고. 그 시절로 초대하고 싶어 이렇게 꾸민 거예요.” DJ가 있는 음악 카페는 박철희(69) 대표의 오랜 꿈이었다. 답동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기에 늘 신포동에 대한 향수가 있었던 그는 10년 전 남동구 만수동에서 CCR을 운영하다 5년 전 지금 자리로 둥지를 옮겼다.

“저도 예전에 ‘별 음악 감상실’, ‘심지 음악 감상실’ 많이 다녔어요. 음악이 너무 좋아서 하루종일 음악을 듣곤 했어요.”

DJ 부스도 희귀하지만, 이곳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전면 벽을 채우고 있는 거대한 스피커들이다. JBL의 플래그십 스피커 에베레스트DD 66000, 매킨토시 MC275, 혼 스피커 등의 고급 장비를 통해 흘러나오는 최고의 음질은 CCR만의 강점. 박 대표는 “최고급 장비를 갖췄다고 자부한다”며 “음악을 트는 DJ도, 듣는 손님도, 카페에서의 시간만큼은 음악을 즐겁고 편하게 즐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DJ 부스의 박철희 대표. 10년 전 섬 일을 접고 신포동에서 그의 오랜 꿈을 이뤘다.
감미로운 분위기와 풍성한 음질을 더해주는 ‘매킨토시 MC275 진공관 앰프’ CCR의 인테리어는 ‘별 음악 감상실’, ‘심지 음악 감상실’의 추억을 소환한다.

인천시 중구 신포로23번길 9 | 032-777-5015     


김유호(56) 대이작도 ‘풀등 밴드’ 단장

학창 시절 송골매 김상복 씨의 베이스 소리가 좋아 기타에 빠졌다. 하나 녹록지 않은 생활로 음악을 접어둔 채 열심히 일했고, 여러 척의 배를 운영하는 선장이 되었다. 하지만 뜨거운 가슴을 채울 수는 없었다. 2017년 주민들과 ‘풀등 밴드’를 결성했고, 2018년부터는 대이작도에서 매년 ‘섬마을 밴드 음악 축제’를 열고 있다. 바쁘고 고단하지만 늘 갈망했기에 매 순간이 행복하다.

박철희 대표도 음악을 늘 갈망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10년 전 섬 일을 접고 음악 카페를 차린다고 했을 때, 내 일처럼 기뻤다.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이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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