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소설 | 굿모닝인천 10월, Vol. 346
글 안보윤 │ 일러스트 송미정
모닝인천 9월, Vol. 345
유영과 유영의 오빠는 물결이 이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드럽게 일렁이다 간혹 포말을 일으키는 바다와 달리 머리 위가 소란했다. 난간에 바짝 붙어선 어린아이들이 새우깡을 던지고 있는 탓이었다. 십수 마리의 갈매 기들이 날렵하게 서로를 비껴갔다. 새우깡을 낚아채는 노란 부리 끝이 사인펜으로 칠해놓은 것처럼 검었다. 월미도 선착장에서 영종도 구읍뱃터까지는 15분 남짓 거리였으나 여객선을 타고 바다를 가로지르는 기분이 제법 나들이다웠다. 평소 데면데면하던 유영과 유영의 오빠가 갑판 위에 나란히 선 것도 그런 예외적인 기분 덕분이었다.
온 가족이 함께한 외출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아빠는 회사 일로, 오빠는 거듭된 훈련으로, 엄마는 가족 모두의 뒷바라지로, 유영은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일로 각자의 자리에서 맹렬했던 시간이었다. 여름휴가도 추석 연휴도 가족 중 누군가는 불참한 채 이어졌다. 모처럼 온 가족이 모이게 된 주말 아침 식탁에서 유영의 부모는 선언하듯 말했다.
“오늘은 계획 같은 거 없이 무작정 나가보자.”
여행 계획만 세우다 올해가 다 가겠어. 큰맘 먹고 멀리 다녀올 생각만 하니까 오히려 꼼짝을 못하는 거야. 가족끼리 가볍게,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만 다녀와도 충분한 건데. 그렇게 말하며 유영의 부모는 남매를 차에 태운 뒤 월미도로 이동했다. 선착장에서 여객선 표를 끊고 차와 사람을 통째로 배에 실을 때까지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유영의 부모가 구읍뱃터 맛집을 검색해 보는 동안 유영은 오빠와 함께 갑판 위에 올랐다. 진회색으로 일렁이는 바다 위로 파란색 파스텔을 힘껏 문질러놓은 것 같은 하늘이 펼쳐졌다. 둥근 구름이 제법 빠른 속도로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유영이 탄 배도 물결도 구름도 갈매기도 모두 같은 속도로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유영은 하얗고 만질만질한 오빠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사계절 내내 빙상장에 있는 오빠는 한여름에도 살갗이 탈 겨를이 없었다. 스케이트가 그렇게 좋은가. 유영은 어쩐지 낯선 기분이 들어 이리저리 오빠를 살폈다. 어릴 때의 오빠는 공벌레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는 걸 좋아했는데 지금의 오빠는 더없이 반듯하고 꼿꼿했다. 활짝 편 어깨와 곧은 목 때문에 이전보다 키가 훨씬 커 보였다.
“오빠는 어떻게 알게 됐어?”
“뭐를?”
“오빠가 평생 하고 싶은 일이 피겨스케이팅이라는 걸 언제,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사실 유영은 학교에 제출하지 못한 종이 한 장 때문에 골똘한 상태였다. 진로희망조사서. 간결한 표 하나가 찍혀 있을 뿐인 종이였지만 유영에게는 그 안에 담긴 모든 단어가 무겁고 어려웠다. 유영은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나 좋아하는 것이 없었다. 또래 중학생들처럼 몇몇 개의 취미가 있었지만 그건 그야말로 잡다한 것들이었다. 유영은 친구들 역시 자신과 비슷하리라 생각했었다. 다들 시간표대로 일과를 보내고 비슷한 학원에 다니고 비슷한 종류의 게임과 미디어콘텐츠를 소비했으니까. 그러나 친구들은 망설임 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쓱쓱 적어 제출했다. 래퍼와 건축가, 애니메이션 디렉터를 적어넣은 것만으로도 친구들은 이미 무언가를 완성한 것 같았다. 민서가 국사선생님, 이라고 또박또박 써넣은 자신의 종이를 보여주며 물었다. 유영아, 너는 뭐가 되고 싶어? 아무것도. 유영이 중얼거렸다. 나는 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어.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오빠가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되겠다고 했을 때 엄마가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너무 늦었다’는 것이었다. 서너 살부터 시작한 애들이 수두룩한 데 넌 벌써 열다섯 살이잖니. 엄마는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서너 살짜리 아이들은 자신이 평생 하고 싶은 일이 피 겨스케이팅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유영의 입장에선 쫄쫄이를 입고 부모를 설득할 만큼 확신을 가졌던 오빠의 열다섯 살도 한없이 이르게만 느껴졌다.
“친구들은 다들 되고 싶은 게 있어. 장래희망이 자주 바뀌는 애는 있지만 나처럼 백지인 애는 없더라고. 제일 큰 문제가 뭔지 알아? 내가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거야.” 유영의 오빠가 희미하게 웃었다. 아이들이 새우깡을 한 줌씩 집어 허공에 뿌리듯 하고 있었다. 멀리 선착장이 보이니 마음이 급해진 모양이었다. 갑판 위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이동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차 안으로 들어가 시동을 걸고 누군가는 계단을 내려가 출구 쪽에 섰다.
“그런 걸 누가 확신할 수 있겠어. 내가 깨달았던 건, 내가 남들보다 피겨를 지독하게 못한다는 사실이었어.”
“못한다고? 근데 왜 그걸 하겠다고 했어?”
“잘하고 싶은 유일한 거라서.”
유영이 팔을 곧게 뻗어 앞으로 내밀었다. 바람을 어루만지는 것 같기도 하고 갈매기를 부르는 것 같기도 한 손짓이었다.
“나는 내가 평생에 걸쳐 잘하고 싶은 걸 골랐어. 다음 단계가 궁금해서 못 참겠는 거. 점프는 어떤 걸까, 트리플 악셀은, 쿼드 플립이나 러츠는 또 어떤 걸까. 끝없이 궁금해지는 거 말이야.”
유영과 유영의 오빠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갑판에 서 내려가려는데 유영의 오빠가 유영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물었다.
“넌 지금 뭐가 제일 궁금해?”
유영은 사거리 편의점 앞에 섰다. 구읍뱃터에서 유영의 가족은 이상할 만큼 자주 웃고 많은 걸 먹고 쉼 없이 떠들었다. 저물녘 집에 돌아올 때는 다들 녹초가 되었을 정도였다. 유영이 만두를 보고 가겠다고 하자 유영의 엄마가 작게 웃었다. 그 고양이 정말 머리가 너무 크더라. 유영의 가족은 편의점 앞에 유영을 내려주고 집으로 향했다. 만두의 물그릇을 살핀 뒤 유영은 북어 간식을 꺼내 밥그릇에 넣어주었다. 고양이용 유산균도 한 포 까서 물그릇에 섞었다.
공벌레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고 앉은 유영에게 만두가 다가와 얼굴을 비벼댔다. 어디 아픈 데는 없어? 유영은 만두의 눈곱을 떼어주고 두툼해진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날이 부쩍 추워져서인지 만두의 털이 빼곡해지고 있었다. 만두가 작게 애옹대는 소리에 한동안 귀를 기울이다 유영은 문득 깨달았다. 내가 지금 제일 궁금해하는 것. 내가 제일 많이 알고 싶어하고, 제일 잘하고 싶어하는 어떤 것. 유영은 머릿속에 떠오른 종이에 천천히 글자들을 적어넣었다. 수의사. 나는 수의사가 되고 싶어. 그에 답하듯 유영의 품에 안긴 만두가 골골골 목을 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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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윤 | 1981년 인천 출신. 2005년 장편소설 <악어떼가 나왔다>로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자음과모음문학상 수상. 소설집 <비교적 안녕한 당신의 하루> <소년7의 고백>, 장편소설 <오즈의 닥터> <사소한 문제들> <우선멈춤> <모르는 척> <밤의 행방>, 중편소설 <알마의 숲>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