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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모닝인천 Dec 09. 2022

아무도 울지 않는 밤 -11-

옴니버스 소설 | 굿모닝인천 12월, Vol. 348

아무도 울지 않는 밤     

글 안보윤 | 일러스트 송미정 





“앗, 고양이다!”

만두는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앞만 보고 걸었다. 커다란 얼굴을 꼿꼿이 들고 꼬리를 느슨하게 내린 채였다. 고양이를 발견하고 잠시 소란해졌던 아이들이 시들해진 얼굴로 골목 반대편을 향해 뛰었다. 만두가 돌아봐야 할 부름은 고양이,라는 뭉뚱그려진 호칭이 아니었다. 그것은 동네 어느 고양이에게나 가능한, 하나도 특별하지 않은 호칭이었다. 만두는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만두라는 이름을 붙여준 이들의 다정한 목소리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조심스러운 손으로 만두의 등을 쓸어주고 고양이용 사료나 닭 가슴살을 건넸다. 보드라운 담요 위로 만두가 올라설 때까지 기다렸다 핫 팩을 넣은 양말을 만두 배 밑에 넣어주곤 했다.

만두가 낮은 담 위로 뛰어올랐다. 배롱나무 가지 끝을 코로 건드리자 때마침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가볍게 흩날리는 눈송이들은 꽃잎 같기도, 잘게 자른 종잇조각 같기도 했다. 만두는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이들에게로 가고 있었다. 사거리 편의점 앞, 만두라는 이름표가 붙은 종이 상자 집이 있는 곳이었다.

“만두, 언니 마중 나온 거야?”

유영이 담 안쪽에서 소리쳤다. 두툼한 패딩 점퍼에 목도리까지 두르고 있는데도 만두는 유영을 바로 알아보았다. 유영은 누구보다 꼼꼼하게 만두를 살피는 사람이었다. 검고 끈적끈적한 이물질이 만두의 뒷발에 달라붙었을 때, 그걸 제일 먼저 눈치챈 사람 역시 유영이었다. 미세하게 절룩이는 만두의 다리를 들여다보던 유영은 편의점에 들어가 물티슈를 사 왔다. 발바닥에 붙은 이물질을 하나하나 닦아내고 털에 엉긴 덩어리들은 가위로 살살 잘라주었다. 만두는 자신을 향해 뻗은 유영의 손바닥에 얼굴을 한껏 문질러댔다.

“어째 만두 얼굴이 더 커진 것 같은데?”

유영의 뒤에 서 있던 유영의 엄마, 선영이 키득대며 말했다. 괜히 왕만두가 아니라니까. 여유롭게 하품을 하는 만두의 입속으로 유영이 알약 하나를 쏙 밀어 넣었다. 만두가 혓바닥으로 밀어내려 하자 슬그머니 주둥이를 잡아 삼킬 때까지 기다렸다. 영양제도 먹어야지, 만두 너 그렇게 간식만 먹다가는 얼굴만 아니라 몸까지 엄청 큰 헤비급 고양이가 된다고. 알약을 꼴깍 삼킨 만두의 턱 아래를 유영이 살살 문질렀다.

“오늘은 엄마랑 서점에 가기로 했거든. 이따 편의점으로 보러 갈게. 만두, 오늘 눈이 많이 내린다고 했으니까 너무 돌아다니면 안 돼.”

눈발이 날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유영이 말했다. 선영과 팔짱을 꼭 낀 유영이 큰길로 걸어 나가는 뒷모습을 만두는 잠자코 지켜보았다. 만두의 콧잔등 위로 제법 굵직한 눈송이 하나가 내려앉았다.     

“어라? 만두 너도 산책 중이야?”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만두가 제자리에 멈췄다. 이팝나무와 철쭉을 잔뜩 심은 흙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잎이 전부 떨어졌지만 복잡하게 뻗은 이팝나무 가지 끝으로 눈송이들이 내려앉고 있었다. 나무 밑동에 등허리를 문지르며 만두는 자신을 부른 사람을 기다렸다. 발소리가 어지럽게 울리더니 두사람이 만두 옆으로 뛰어왔다. 동현과 정연이었다.

만두는 동현의 얼굴을 신기하게 올려다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 동현은 잔뜩 찌푸린 얼굴이었다. 충혈된 눈과 누렇게 뜬 얼굴이 몹시 피곤해 보였다. 동현은 종이 상자로 만들어진 만두의 집을 들여다보며 이깟 길고양이도 집이 있는데,라고 투덜거렸다. 동네 남쪽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를 오래 노려보며 편의점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의 동현은 말갛게 빛나는 얼굴로 만두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같은 디자인에 색만 다르게 맞춰 입은 스포츠 점퍼가 동현과 정연을 꼭 닮은꼴로 만들었다. 정연은 햇볕에 종일 말린 이불처럼 포근한 냄새와 포슬포슬한 온기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만두는 정연을 만난 후의 동현이 마음에 들었다.

“마침 잘됐다. 동네를 한 바퀴 돈 뒤에 널 만나러 갈 예정이었거든.”

동현이 점퍼 주머니에서 빨간색 가죽끈 하나를 꺼냈다. 가볍고 보드라운 가죽에 ‘만두’라는 이름이 적힌 은색 펜던트가 걸려 있었다. 동현은 조심스럽게 만두의 목에 목줄을 걸어주었다.

“크리스마스 선물.”

어쩐지 쑥스러워하는 동현을 대신해 정연이 말했다. 만두는 정연과 동현의 다리에 마음껏 몸을 문질러댔다. 눈에 띄게 굵어진 눈송이들이 두 사람과 만두의 머리 위로 펑펑 쏟아졌다.     

흙길 위에 쌓인 눈 위로 작은 발자국을 남기며 만두가 뛰기 시작했다. 사거리 편의점에 도착했을 때는 주위가 온통 하얗게 변해 있었다. 만두는 몸 위로 연이어 떨어지는 눈을 피해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담요에 젖은 털을 문지르자 담요도 털도 젖어 몸 누일 곳이 없었다. 엉거주춤 몸을 세우고 있던 만두가 상자에서 도로 나왔다. 편의점 테이블에도 바닥에도 눈이 수북했다. 아까만 해도 느린 궤적을 그리며 팔랑거리던 눈송이들이 숫제 소낙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솨아아아. 직선으로 내리긋는 눈발 사이로 북쪽으로 뻗은 언덕길이 보였다.

만두는 저 가파른 언덕길을 늘 같은 속도로 오르내리는 사람을 알고 있었다. 기준은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정확한 보폭으로 걷고 하루도 빠짐없이 만두를 돌보러 왔다. 종이 상자에 작은 구멍을 뚫어 집을 만들어준 사람도, 왕만두라는 이름을 지어준 사람도 기준이었다.

만두는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도 기준이 올 시간이면 꼭 편의점으로 돌아와 털을 골랐다. 기준에게서는 물기를 흠뻑 머금은 풀 냄새 같은 것이 났다. 웅장한 크기의 나무나 화려한 꽃 냄새는 아니었으나 더없이 건강하고 싱싱했다. 만두가 작게 울음소리를 냈다. 이제 바람까지 가세해 회오리치 듯 밀려드는 눈발 안에서 만두만이 맨몸이었다. 만두가 애달프게 한 번, 또 한 번 울었을 때였다.

“만두, 너 어딜 그렇게 돌아다녀?”

익숙한 목소리에 만두가 반짝 고개를 들었다. 편의점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는지 기준은 조금도 눈에 젖지 않은 채였다. 따뜻한 손이 얼굴을 붙잡아 만두는 잠시 울음을 멈췄다. 기준이 목도리를 풀어 만두의 몸을 덮는가 싶더니 누에고치 싸듯 돌돌 말았다. 순식간에 꽁꽁 묶인 만두가 기준을 올려다 보았다.

“전에는 도무지 형편이 안됐지만 말이야. 이제 취직도 했고 월급도 꼬박꼬박 나오니까 만두 너 하나쯤은 먹여 살릴 수 있어. 더 추워지기 전에 나랑 가자.”

품 안에 만두를 넣은 기준이 점퍼 지퍼를 올렸다. 둥글고 커다란 만두의 얼굴이 지퍼 위로 불쑥 튀어나왔다. 언덕길을 오르는 동안 거센 눈발이 달려들었으나 하나도 춥지 않았다.

만두는 자신을 단단히 끌어안은 기준의 품 안에서 밤새 얼어붙을 눈길을, 그러나 해가 뜨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누구든 걷게 될 눈길을 바라보았다. 만두는 습관처럼 울음소리를 내려다 멈추었다. 그러고는 울음 대신 작게 가르랑대며 기준의 품 안으로 쏙 들어갔다.

이후 사거리 편의점 앞에 종이 한 장이 붙었다. ‘왕만두 없음. 만두에게 가족이 생겼어요.’ 매직으로 꾹꾹 눌러쓴 단정한 글씨가 눈으로 가득한 거리를 마주 보고 있었다. 날이 밝으면 만두를 돌봐주던 모든 사람이 만두의 소식을 알게 될 것이었다. 마침내,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이었다. <끝>




안보윤 | 1981년 인천 출신. 2005년 장편소설 <악어떼가 나왔다>로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자음과모음문학상 수상. 소설집 <비교적 안녕한 당신의 하루> <소년7의 고백>, 장편소설 <오즈의 닥터> <사소한 문제들> <우선멈춤> <모르는 척> <밤의 행방>, 중편소설 <알마의 숲>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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