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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le Ale Jun 05. 2020

사냥개 언론과 마녀사냥



한국 언론에 대한 불신과 비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사냥개 언론"이라는 새로운 수식어가 하나 더 붙게 될 듯하다. "일본군성노예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에 대한 언론 보도 행태를 꼬집으며 오슬로대학 교수 박노자가 사용한 표현이다. 박교수는 국민일보 기사 <[단독]“윤미향과 갈등, 심한 모욕감까지” 해외 단체의 고백>를 인용하며 “누가 ‘저기, 잡아라!’라고 명령하면 달려가서 ‘사냥감’을 막 물어뜯어 잡는, 이런 모습”이라며 이같이 개탄했다. 주인의 명령에 따라 사냥감을 물어오는 사냥개에 언론을 비유한 것인데, 이런 비유까지 동원될 정도로 심각한 문제이다.


자극적 선정적 보도를 일삼는 언론을 조롱하는 표현인 기레기 소리만 해도 참담한 일인데 특정 목적을 가진 누군가의 명령에 복종하는 언론이라는 의미인 사냥개까지 나올 정도니, 이것은 언론의 사망선고보다 더 심하다. 언론을 사회악으로 규정하는 표현이다. 어쩌다 언론이 이 지경이 되었는지 답답한 일이다. 건강한 언론이 사회를 지탱하는 버팀목인데, 버팀목이 썩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사회의 흉기가 되어버렸다는 비판이니, 답답한 일이다.


이렇게 격앙된 반응이 나온 것은 국민일보 기사가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기사의 논점은 정의연이 평화의 소녀상 해외 건립을 추진하면서 현지 시민단체와 갈등을 빚었다는 내용이다. 시민단체뿐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의견 충돌이 있을 수 있고 갈등을 빚을 수 있다. 여러 사람과 단체가 모여 일을 추진할 때 당연히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일을 무슨 큰 문제인 것처럼 자극적인 제목을 붙여 기사화했으니, 비난을 받는 것은 필연이다.


허재현 전 한겨레 기자도 국민일보 보도에 대해 “이런 것까지 문제 삼으며 단독기사라고 내는 건 너무 한 것 아니냐”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허 기자는 “30년 시민단체 운영하고 활동하다 보면 원래 다양한 갈등과 마찰을 겪고, 보는 사람마다 평가가 다르게 마련이고, 무슨 부정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단순히 사업 진행과정에서 마찰이 있었던 것을 갖고 기사를 쓰면 자유로울 사람이 누가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이러니 언론이 특정 목적을 가지고 사냥감을 물어뜯고 있다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사냥개는 명령을 내리는 주인이 있다. 박노자 교수의 언론 비판은 곧 정의연을 사냥하는 사냥개에게 명령을 내린 배후가 있다는 의심을 제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 언론의 보도 행태를 보면 이런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의혹이 있다면 문제 제기를 하고 사실을 밝히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언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언론이 마녀사냥을 한다고 느껴진다면 더 이상 언론이라 할 수 없다. 조국 전 장관 관련 보도 때도 마녀사냥을 방불케 했는데, 정의연 보도에서도 마찬가지 느낌을 갖게 만들고 있다. 이런 보도가 나올 때의 공통점은 그 사냥의 대상이 기득권층의 이익에 반하는 인물이나 단체라는 점이다. 박노자는 "저들은 이재용 등 한국 사회를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식으로 ‘보도’질을 하나요?”라고 반문했다. 곧 언론이 기득권층에는 관대하고 그 대척점에 대해서는 가혹하다는 점을 꼬집고 있다.


한국 언론의 문제가 심각하고 사회의 공기가 아니라 오히려 해악이 되고 있다는 지적은 벌써 오래된 일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사회가 언론을 방치했는지 반성해야 할 일이고, 구성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일반 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언론개혁의 시급함은 이미 임계점에 도달한 느낌이다. 여러 개혁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특히 언론개혁이 시급하다. 건강한 사회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시민운동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므로,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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