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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le Ale Jun 28. 2020

베트남 전쟁의 기억



흑인 문제에 천착해온 미국의 대표적 흑인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의 최신작은 베트남 전쟁의 기억에 간한 영화이다. 러닝타임이 2시간 반 가량이나 되는 영화 "다 5 블러드(Da 5 Bloods)"는 감독이 여러 주제를 녹아내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사회성 있는 주제를 많이 다루었던 감독이기에 베트남 전쟁에 있어서 흑인의 역할과 이들이 느끼는 전쟁에 대한 시각을 다루고 있지만, 그 이외에 인종 문제와 빈부격차 등 여러 요소를 버무린 탓에 약간은 산만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베트남전 참전 용사인 흑인 노병 4명이 다시 베트남을 찾는다. 이들이 다시 베트남을 찾은 표면적 이유는 전쟁 당시 동고동락했던 자칭 "5 블러드" 부대원 5명 중 총격전 끝에 사망한 동료이자 리더였던 전우의 시신을 수습하러 온 것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당시 땅에 묻어 놓고 온 금괴를 찾겠다는 강한 동기가 있지만, 4명은 각자 다른 나름의 사연과 동기가 있다. 


이들은 전사한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고, 금괴를 찾는 데는 성공하지만, 금괴를 해외로 밀반출해주기로 계약한 프랑스인의 배신으로 인해 처참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반출한 금괴는 유가족과 흑인 인권운동단체에 기부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전성기 시절 스파이크 리 감독 특유의 날카로움은 많이 무뎌졌지만 베트남 특유의 풍광과 분위기가 잘 살아있어서 화면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다소 긴 러닝타임을 감수할 만하기는 하다. 물론 개인의 취향에 따라 평가는 많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미국 내에서의 평은 상당히 좋은 편이고, 평론가에 따라서는 스파이크 리 감독 작품 중 최고의 작품이라는 평도 찾아볼 수 있다.


전쟁이 끝난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 관한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내고 있다.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 "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디어 헌터"와 같은 영화들은 베트남 전쟁의 참상과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이 겪는 트라우마를 묘사하고 있으며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 영화의 성격이 강하다. 그 이후에는 "람보"류의 다소 터무니없는 전쟁 영웅의 영화들이 한때 봇물을 이루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풀 메탈 재킷"이나 올리버 스톤 감독의 "플래툰"과 같은 영화는 실제로 참전한 군인의 시각에서 냉정하게 전쟁을 그려냈다는 평을 받았다. 그리고 스파이크 리 감독의 최근 영화는 흑인은 베트남 전쟁에서 무엇이었는지를 묻고 있다. 이렇듯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미국 영화들은 셀 수 없이 다양한 시각을 갖고 제작되었고, 지금도 계속 제작되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세계 최강대국의 압도적 전력과 재원을 쏟아붓고도 결국 패전하여 철수한 뼈아픈 전쟁이기에 할 말도 많고 다양한 견해와 논쟁도 많은 듯하다. 그래서 그렇게나 많은 영화와 문학 작품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의미가 깊은 전쟁이다. 물론 우리 사회 안에서도 다양한 견해와 시각이 존재하고 있겠으나, 한국이 경제 발전을 이루게 된 여러 요인 중 하나가 베트남 전쟁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으니,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이었던 베트남 전쟁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 사회에서 베트남 전쟁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전쟁의 참상이야 말해봐야 입만 아픈 일이고, 한국을 포함하여 당시 전쟁에 동원되었던 모든 주체들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인데, 유독 한국에서는 그 트라우마에 대해 말하는 영화도, 문학 작품도 찾아보기 어렵다. 한때 온통 미화되고 영웅시되었던 베트남 참전용사들이 실제로 어떤 일을 겪었고 지금 어떤 대우를 받고 있고 어떤 상태에 놓여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런 논의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예 논의 자체가 금기시되고 있다. 


수교한 지 벌써 오래되었고, 최대 외국 자본 투자국이며 베트남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많은 한국 교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베트남인데, 이런 중요한 국가에 대한 과거 기억을 애써 외면한다고 묻히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더 늦기 전에 베트남 전쟁에 관한 다양한 시각의 콘텐츠가 제작되고 활발한 토론과 분석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세월이 더 흘러가고, 점차 희미해지는 기억은 곧 왜곡으로 이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베트남 전쟁에 관한 객관적이고 냉정한 분석을 남기는 것은 우리 세대의 의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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