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스와 재즈, 창녀와 노예무역
재즈는 약간은 매니아적이다. 대중적이기보다는 와인과 어울리는 세련된 문화로, 교양 있는 사람의 전유물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부르주아적인 냄새도. 그런데 재즈의 기원은 그런 교양이나 부르주아 문화와는 태생부터 거리가 아주 멀다. 재즈가 탄생한 도시 뉴올리언스부터 창녀와 환락의 도시였다.
재즈의 뿌리는 블루스이다. 끈적하고 느린 블루스는 한국에서는 퇴폐적 뉘앙스가 있다. 참 억울하게도 블루스는 한국에서 본질과 동떨어진 엉뚱한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블루스는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와 미국 남부 농장에서 비참하게 일하던 흑인들의 한이 서린 음악이다. 그 블루스에 뿌리를 두고 진화한 것이 재즈이고, 따지고 보면 락앤롤도 같은 뿌리이다. 흑인 노예들이 고달픈 삶을 달래기 위해 노래하던 일종의 노동요인 블루스에 뿌리를 둔 재즈가 태어난 곳은, 역시 밑바닥 고달픈 인생들이 모여있던 뉴올리언스에서도 매춘 밀집지역으로 유명한 스토리빌이다.
노예무역이 한창 번성하던 시절, 뉴올리언스는 그 중심지였다. 미국 남부의 대농장주들은 뉴올리언스를 통해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공급받았고, 신대륙과 구대륙간의 중요한 무역항구로서 뉴올리언스는 번영을 구가했다. 항구에 배가 도착하면 다양한 군상들이 흘러들어왔고 자연스레 스토리빌의 술집으로 향했다.
당시 술집은 매춘을 겸했기에 술 한잔을 걸친 남자들이 술집의 여자들과 2차를 하게끔 흥을 돋우어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술과 더불어 그들을 "꼴리게" 만들어 줄 음악이 필요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이 재즈이다. 그런 연유로 음악평론가 강헌은 재즈를 '꼴림'이라고 번역했다. 항구도시 술집에서 매춘을 위한 흥을 돋우기 위한 음악이니 처절한 밑바닥 삶의 현장에서 발생한, 지금 우리가 재즈에 대해 느끼는 우아함과는 거리가 한참 먼 음악이 재즈이다.
지금은 교양과 세련됨을 상징하는 음악처럼 되었지만, 그 기원에서 알 수 있듯이 재즈는 노예들의 노동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집창촌의 실용 음악이었다. 이런 하층민의 문화가 주류 문화 즉 메인스트림으로 자리 잡은 최초의 케이스이니, 그 문화적 의미는 지대하다. 뉴올리언스 술집에서 흥을 돋우던 재즈는 루이 암스트롱을 위시한 재즈 뮤지션들을 중심으로 대중 음악계를 평정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 과정에서 재즈는 진화를 거듭하고 지금의 세련되고 고급한 이미지를 갖추게 된다.
뉴올리언스는 원래 프랑스 식민지였다. 그래서 지명도 프랑스의 오를레앙에서 따온 뉴 오를레앙인데 영어식 발음으로 뉴올리언스가 되었다. 미국에서 가장 이국적인 도시로 손꼽히고, 미국인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도시로 꼽힌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통치를 거치면서 이국적인 건물이 아직도 남아 있고, 청교도 정신 충만한 미국의 일반적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남부의 나른하고 퇴폐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흘러넘치는 곳이다. 재즈가 탄생했던 시절의 분위기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뉴올리언스의 구 도심인 프렌치 쿼터에서는 지금도 항상 재즈가 흘러넘친다. 프렌치 쿼터에서도 가장 중심가인 버번 스트릿에서는 재즈뿐 아니라 유명한 스트립바들이 즐비하다. 술집에서 매춘을 위한 흥을 돋우던 과거의 전통(?)이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다. 물론 매춘이 불법이기에 재즈바들은 순수하게 음악을 감상하는 곳이지만 프렌치 쿼터를 걷다 보면 매춘과 음악이 뒤섞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재즈의 본고장답게 뉴올리언스에는 유서 깊은 재즈 클럽들이 많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가 프리저베이션 홀이다. https://www.preservationhall.com/ 거의 연중무휴 뉴올리언스 스타일 재즈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
뉴올리언스는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영화의 단골 촬영지이기도 하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아니지만, 여전히 전차가 다닌다.
재즈가 처음 등장한 시기를 1917년으로 잡는다. "오리지널 딕시랜드 재즈 밴드"라는 재즈 뮤지션이 뉴올리언스에서 1917년 처음 발매한 음반이 최초의 재즈 음반으로 인정받고 있다. 고달픈 민중의 삶에서 탄생한 음악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공교롭게도 1917년은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해였다. 재즈와 러시아 혁명, 왠지 부조화 같으면서도 통한다. 비루한 민중이 만들었고 주류가 되었지만, 이내 다시 마이너로 떨어진 궤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