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락 친나왓과 태국 정치
빼어난 미모로 유명한 태국의 전 총리 잉락 친나왓이 구속될 위기에 처했다. 총리 재임 시절 추진했던 쌀 수매 정책과 관련된 혐의로 기소되어 선고를 앞두고 있는데, 유죄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잉락은 총리 재임 때(2011.8.5~2014.5.7) 시장 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정부가 농민들로부터 쌀을 구매하는 정책을 실시했었다. 당연히 농민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은 정책이었다. 이 과정에서 발생된 비리를 방치하여 정부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렇게 단순한 사건이 결코 아니다.
얼핏 포퓰리스트 정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단순 비리 사건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 사건의 본질은 태국 정치의 근본적 문제, 즉 레드셔츠와 옐로셔츠로 상징되는 두 세력 간의 오랜 갈등에서 찾아야 한다. 잉락의 오빠이자 전 총리였던 탁신 친나왓으로 상징되는 레드셔츠 세력과 주로 기득권 세력으로 구성된 옐로셔츠 간의 권력 투쟁은 지금도 진행형이고, 잉락의 재판은 그 싸움의 정점에 있다.
친서민 정책으로 서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탁신 전 총리는 기득권 세력을 대표하는 군부의 쿠데타로 2006년 실각하고 망명을 떠났다. 탁신 지지자들은 탁신의 여동생 잉락을 내세운 2011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권력을 회복했으나 군부는 2014년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잉락을 축출하였고 그녀를 재판정에 세웠다.
쿠데타로 집권한 현 정부 입장에서는 서민들, 특히 농민들에게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쌀 수매 정책을 폄훼하고 잉락의 책임을 물어 자신들이 일으킨 쿠데타의 정당성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재판의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어차피 구속되어야 할 운명인데, 잉락은 오빠처럼 해외도피를 하지 않고 끝까지 운명과 맞서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최고 10년형까지 선고될 가능성이 있으니, 잉락의 각오가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태국 정부로서는 차라리 그녀가 오빠처럼 해외로 도피해주기를 더 원할 수도 있다. 그녀가 부당한 권력과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로 감옥행을 택한다면 다시금 태국 정국은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오빠인 탁신이 2년형을 선고받고 해외로 도피한 것에 비하면, 그녀가 감옥에 갈 각오를 하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의미가 매우 크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태국 군부는 탁신과 잉락을 두 번의 쿠데타를 일으키면서까지 축출해야 했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탁신이라는 사람과 그가 상징하는 태국의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 탁신은 성공한 기업가 출신으로 태국 최고 부자 반열에 올랐으며, 한때 영국 프리미어 리그 맨체스터 씨티 구단을 소유했을 정도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정치에 뛰어든 탁신은 1998년 타이 락 타이당을 창당하고 2001년 선거에서 승리하여 총리가 된다.
총리에 취임한 탁신은 친서민 정책을 실시하여 가난한 지방의 빈곤을 크게 개선하였고, 의료보장제도를 실시하여 서민들이 30밧(약 1000원)의 저렴한 비용으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일반 대중들에게 탁신의 인기는 폭발적이었고, 태국 정치 역사상 최초로 4년의 임기를 무사히 마친 총리가 되었다. 이어진 2005년의 선거에서 타이 락 타이당은 압승을 거두었고 탁신의 장기집권이 확실시되었다.
정상적 선거로는 탁신을 막을 방법이 없었던 기득권 세력은 2006년 군부 쿠데타를 통해 탁신을 끌어내렸고, 타이 락 타이당을 해체하고 부패 혐의로 탁신을 기소하였다. 탁신은 해외로 도피하였으나 여전히 태국 서민들은 그에게 절대적 지지를 보냈고, 탁신의 여동생 잉락이 이끈 푸에이 타이당은 2011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잉락은 태국 최초의 여성 총리로 취임하였다. 그녀는 오빠와 마찬가지로 친서민 정책을 펼쳤고, 기득권 세력은 공정한 선거를 통해서는 권력을 잡을 가능성이 없기에, 다시금 군부 쿠데타를 통해 잉락을 축출하였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태국의 모습이다.
만일 자신이 공언한 대로 잉락이 해외 망명을 하지 않고 끝까지 재판에 임해 실형을 받는다면, 그녀는 탁신을 뛰어넘는 정치적 상징이 될 가능성이 크다. 탁신은 서민층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지만 비리와 부정부패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반면 잉락의 혐의는 억지스럽게 만들어진 측면이 강해서 그녀가 구속된다면 정국이 어떻게 발전할지 예단하기 어렵다. 어쩌면 잉락은 태국에 있어서 민주주의의 상징이 될 수도 있다.
처음 잉락은 오빠를 대신해 내세워진 아바타의 이미지가 강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 그녀는 정치적으로 성숙해졌고, 자신의 역할과 위상에 대해 고민한 끝에 현실에 맞서기로 결정을 내린 것일지도 모른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받아들이고 어려운 현실에 맞서 싸워야 하는 힘든 길을 택하게 된 그녀의 모습이 짠하다. 물론 그녀가 선고를 앞두고 태국을 떠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인터뷰 영상에서 그녀는 비장함이나 결연함보다는 차분한 모습이다. 외유내강,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그녀가 입증하고, 태국 정치 발전에 기여하기를 기대해본다.
이글을 작성한 것이 지난 7월이었는데, 최근 뉴스에서 선고를 앞두고 잉락이 망명하였다고 한다. 현지 언론에 의하면 현 정권의 동의 없이 잉락의 망명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현 정부가 잉락에게 망명할 것을 강요했다는 견해도 있다. 잉락은 자신에게 유죄가 선고될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에 성실히 임할 것을 다짐했었다. 감옥에 갈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니 현 정부에서 잉락에게 망명을 강권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높다.
어떤 압력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태국 정국은 당분간 안정될 것이다. 잉락이 감옥에 갔다면 순식간에 정치적 순교자로 부상했을 것이고, 태국 정국은 소용돌이에 휩싸였을 것이다. 한편으로 재벌 출신 친나왓가문 사람들은 정치적 박해를 꿋꿋이 헤쳐나갈 의지와 역량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새삼스럽게 민주화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걸고 싸웠던 대한민국 사람들의 위대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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