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le Ale Aug 23. 2017

태국 정치와 대학, 그리고 탁신

민주주의, 권위주의, 그리고 왕정


태국의 명문대학이자 엘리트 대학으로 출라롱콘 대학이 꼽힌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태국 대학생들, 특히 출라롱콘 대학생들은 교복을 입는다. 교복으로 맵시를 부리는 여학생들이 많아서 태국 대학생들의 교복을 매력적인 전통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반드시 교복을 입어야 한다는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교복은 거의 강제이다. 대학마다 다른 교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대학생들이 똑같은 교복을 입는다. 태국 양대 명문대인 출라롱콘 대학과 탐마삿 대학에서 교복 의무화 반대 운동이 있었지만 여전히 태국 대학생들은 교복을 제복처럼 입으며, 교복을 입지 않은 학생이 강의실에서 쫓겨나는 경우도 있었다. 


태국 대학생들에게 교복은 강요된 제복이라기보다는,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드러내는 자부심의 표현이기에 자발성이 강하다. 강요이건 자발적이건, 대학생이 교복을 입는다는 사실 자체가 태국 사회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왕립대학이고 보수성이 강한 출라롱콘 대학은 교복이 의무이지만, 국립대학이며 상대적으로 리버럴한 탐마삿 대학에서 교복은 사실 선택사항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탐마삿대 학생들은 교복을 자발적으로 입는다.


교복은 눈에 보이는 특징이지만, 외국인들은 알기 어려운 전통으로 충성맹세 의식이 있다. 출라롱콘 대학에서는 신입생들이 단체로 출라롱콘 대왕의 동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하는 의식을 행한다. 그런데 정작 출라롱콘 대왕은 이런 관습을 폐지한 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폐지한 의식을 100여 년이 지난 후에 자신의 이름을 딴 대학교 학생들이 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의식은 국왕에 대한 충성 서약이라기보다는 국왕으로 상징되는 태국 내 기득권 세력에 대한 충성 서약이다. 태국이 절대 왕정 국가에서 입헌군주국으로 전환된 것은 1932년이고 현재도 입헌군주국가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1956년 쿠데타로 군부가 정권을 잡으며 절대 왕정 시대의 관습이 되돌아왔다. 쿠데타 정권은 국왕에 절대 충성을 표방하고, 자연스럽게 국왕은 입헌군주제도의 국가에서 보기 드물게 강력한 왕권을 가지게 되었다.


출라롱콘 대학의 충성 서약 의식도 1990년에 부활되어 지금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조치들, 즉 과거 전통의 부활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보수 세력들에 의해 주도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미 백여 년 전에 폐지된 관습을 되살리려는 노력은, 역설적으로 기득권 세력의 기반이 점점 취약해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교복을 입고, 충성 서약을 하는 것에서 보이듯이 태국 사회는 권위주의가 강하게 남아있는 사회이다.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일반 민중들은 기득권의 그런 권위주의를 체념하고 받아들였다. 그런 민중들의 의식에 일대 혁신을 가져온 것이 바로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이다. 탁신 자신은 재벌이지만 친서민정책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되어 총리에 취임한 이래, 공약을 실질적으로 실천한 최초의 태국 정치인이다. 서민들은 열광했고, 자신들의 투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엄청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탁신이 태국 정치에서 가지는 상징성은 대단한 것이다. 


선거로는 도저히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자 기득권 세력은 쿠데타로 탁신을 실각시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신의 여동생 잉락 친나왓이 다시금 선거에서 승리하여 집권하자 또다시 쿠데타로 잉락을 축출하고 정권을 잡았다. 잉락은 현재 부패 혐의로 기소된 상태이다.


태국을 미소의 나라라고 하고, 태국 사람들이 항상 친절한 미소를 잃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온화한 미소 뒤에는 첨예한 정치적 갈등이 있다. 레드셔츠와 옐로셔츠로 상징되는 두 세력은 내전을 방불케 하는 갈등을 겪었고, 그 갈등은 잠재된 형태로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태국의 정국은 지냔 십수 년간 기득권 세력과 기층민 세력 간 치열한 헤게모니 쟁탈전으로 얼룩져 있다. 레드셔츠와 옐로셔츠로 상징되는 이들 두 세력 중, 기득권 세력인 옐로셔츠가 왕실의 색인 황금색을 자신들의 상징 색으로 채용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태국인들의 미소를, 오랜 세월 동안 억압받고 착취당한 결과 체념과 달관의 경지에 오른 미소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국왕에 대한 존경심과 더불어 왕으로 상징되는 기득권 세력에 대한 격렬한 저항이 혼재되어 복잡하게 얽혀있는 태국인들의 미소는 실상 씁쓸한 미소가 아닐는지.


태국 정치와 탁신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작가의 이전글 초저가 패키지여행의 진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