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le Ale Sep 12. 2017

루앙남타, 라오스

동남아 부부 배낭여행기 5

루앙남타는 라오스 북부의 조용한 도시이다. 도시라고 하기보다는, 조용한 마을이다. 관광도시가 아니기에 여행객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배낭여행객들이 머무는 게스트하우스가 몇 개 있고, 트레킹을 하는 관광상품도 있다.


여유를 가지고 머무르며 주변을 둘러보면 좋았을 텐데, 우리는 이틀간 머물며 잠시 쉬고 중국으로 넘어갔기에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도시이다. 아내는 다음에는 여유를 가지고 루앙남타에 다시 와서 머무르고 싶어 했다. 딱히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지만 관광객이 거의 없는 이곳은 라오스의 속살을 살짝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작은 시내에는 이렇게 낡은 트럭들이 운행되고 있다. 도시가 매우 작기에 번화가라고 할 만한 곳이 딱히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시내 한복판에 큰길을 따라 상점 거리가 형성되어 있고 이곳이 중심가이다.


이 도로를 벗어나면 딱히 거리라고 할만한 곳은 없다. 길지 않은 이 중심도로에 루앙남타의 상업시설이 밀집되어 있다.


중국 국경에서 가깝기 때문에 중국의 영향이 느껴진다. 한자 간판이 많이 보이고, 중국에서 가져온 듯한 차량도 보인다.


상점들의 모습도 매우 소박하고 정겹다.


동남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한글이 쓰인 버스이다. 한국의 중고 버스가 많이 수출되어 이곳에서 교통수단을 제공하고 있다. 한류 덕분인지 몰라도, 한글이 쓰인 버스를 일부러 한글을 그대로 놔두고 운행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왔다는 것이 일종의 프리미엄이다.


숙소 앞에 위치해 있어서 자주 이용했던 레스토랑이다. 저녁에 여기 앉아 비어라오를 마시면 이국적 정취와 더불어 조용한 행복을 맛볼 수 있다.

 

외국 여행객이 주로 찾는 레스토랑도 있다. 영어로 된 메뉴를 제공하고 영어가 통하는 식당이다.




루앙남타의 숙소는 게스트하우스 형태가 대부분이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인데, 트립어드바이저 평이 괜찮아서 선택했다. 다음번에 다시 루앙남타를 찾는다면 아마도 다른 게스트하우스에 묵을 것이다. 루앙남타의 숙소는 대부분 비슷한 수준이라 시설이 특별히 좋거나 나쁘거나 할 이유는 없고, 위치와 주인의 서비스가 중요한 선택 이유가 될 터이다.


게스트하우스 전경이다. 비교적 깔끔한 편이고 청소 상태도 좋았다. 우리는 1층에 묵었는데, 2층에는 우리에게 조건이 맞는 방이 없었다. 지내기에는 2층의 방이 여러모로 더 좋은 조건일 듯싶다.


대단한 뷰는 아니지만 뷰가 있는 레스토랑도 있다. 레스토랑 이름은 바뀌었지만, 아직도 저 자리에서 그대로 영업은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베이커리도 있다. 베이커리를 한자로 부식품이라 표기했는데, 정확한 표기인지는 모르겠다. 빵집이라기보다는 슈퍼마켓이라 생각하는 것이 맞겠다. 어디에나 한자가 표기되어 있어서 중국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다. 요즘에는 더욱 영향력이 커져서 인도차이나반도의 북부 지역은 중국인들이 상권을 주도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베트남에서는 물론이고, 라오스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초상화이다. 여행 도중 많은 곳에서 호찌민의 초상이나 사진을 걸어놓은 집을 볼 수 있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특히 동남아의 사회주의 국가에서 호찌민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레닌의 초상화는 루앙남타에서 처음 보았다. 대부분 호찌민의 초상만을 걸어놓은 집이 많았는데 이 집에는 레닌과 호찌민이 나란히 걸려있다.


동남아에 관심을 가지고 여행을 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곳의 역사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 가장 중요한 인물로 호찌민을 꼽지 않을 수 없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인물을 꼽으라면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호 아저씨로 불리는 온화한 인상의 아저씨, 호찌민을 꼽을 것이다. 격동의 20세기 많은 혁명가들 중 가장 유명하고 대중적 아이콘이 된 인물은 체 게바라겠지만, 개인적으로 호찌민을 20세기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고 싶다.


체 게바라가 개인적 신념을 위해 치열하고 타협 없는 화려한 삶을 살았다면, 호찌민은 개인적 신념은 물론 그 신념이 자신의 동포들에게 실현될 수 있도록 절제하고 자제하고 때로는 타협의 형태를 빌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변절했다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진심으로 인민을 사랑했고 그 진심이 통했고 결국 최후의 승리자가 되었으며,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저렇게 민중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체 게바라가 불꽃이라면 호찌민은 촛불이라 비유할 수 있겠다. 체 게바라가 젊은이들 티셔츠에 새겨진 대중문화적 아이콘으로 소비되는 반면, 호찌민은 동남아 소박한 농가 벽면에서 인자하고 온화한 미소로 내려다보고 있다. 두 혁명가의 살아생전 보여줬던 행보만큼이나 사후에 추모받는 방식도 극명하게 대비가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치앙마이에서 루앙남타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