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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le Ale Nov 13. 2017

쿤밍에서 베트남 사파까지

동남아 부부 배낭여행기 11

쿤밍에서 베트남 하노이로 이동하기 위해 항공편을 알아봤으나, 가격이 너무 비쌌다. 가난한 배낭여행자에게 과도한 비용인지라 버스를 이용하여 베트남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비용과 시간을 아낄 겸, 그리고 중국에서 색다른 경험도 해볼 겸, 슬리핑 버스를 이용하여 베트남 사파로 가기로 계획을 했다. 우선 쿤밍에서 베트남 국경 도시인 허커우로 이동하고, 국경을 넘어 베트남 국경도시 라오까이로 입국하고 사파로 가면 된다.


쿤밍에서 허커우까지 가는 슬리핑 버스를 미리 예매하기 위해 버스 터미널에 가서 표를 구매했다. 어느 자리가 좋은 자리인지 알 수 없으니, 그저 운에 맡기고 표를 끊을 수밖에 없다. 표를 구매하고 다시 시내로 나와 윈난대학교 구경을 할 요량으로 시내버스를 타고 가려하는데, 도대체 말이 통하지 않아서 어느 버스를 타야 하는지 난망하게 되었다. 잠깐 헤매고 있으니, 어느 중국 청년이 영어로 자신이 타는 버스를 같이 타면 윈난대학교를 가니까 자신을 따라오라고 한다. 중국에서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인데, 운이 좋았다.


비내리던 쿤밍 버스 터미널


터미널 군상 풍경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



택시를 타면 편하고 좋지만, 굳이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이유는 현지의 생활을 좀 더 가까이 느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손님이 방문하면 일부러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게 하는데, 생생한 한국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아들 한다. 마찬가지로 내가 외국에 나갈 때도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이 중국 청년은 아마 틀림없이 목적지가 윈난대학교가 아니었을 텐데, 우리가 내릴 곳을 가르쳐주고 같이 내려서 자신을 따라오라며 앞장을 섰다. 지도가 있고 시내에 들어오면 대략 위치를 짐작할 수 있으니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어리바리 외국여행객에 대한 배려가 고맙다. 이런 것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만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괜찮다고 해도 기어코 우리를 윈난대 앞에 데려다주고 간 중국 청년, 지금도 생생히 내 기억에 남아있다.


라오스 방비엥에서 루앙프라방 이동하는 버스에서, 엄연히 표가 있는데도 중국 관광객이 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자기 자리라고 억지를 쓰고 움직이지 않는 바람에 중국인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있었는데, 쿤밍에서 만난 청년은 그런 선입견을 없애주었다. 어디를 가도 좋은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모두 개인이 가진 좁은 경험의 틀에서 세상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더 많이 다니고 더 많이 경험해야 한다. 여행을 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독서나 미디어를 통해 간접 경험으로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지만, 직접 경험에서 얻어지는 생생한 체험에 비할바 아니다.


머무르는 곳에 대학이 있으면 한번 들러보는데, 대학가에는 싸고 맛있는 밥집이 많기 때문이다. 윈난대 인근에도 역시 나름 힙한 음식점들이 꽤 있어서 값싸게 식사를 해결했다. 아내는 맛있는 식당을 찾는 것에 본능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어서, 대략 아내가 가자고 하는 곳에 들어가면 실패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무딘 나의 미각이 한몫 하기도 하지만.


날씨가 꾸물꾸물하여 쿤밍에서 머무른 시간이 아쉽지만, 다시 짐을 싸서 야간 슬리핑 버스에 올랐다. 호기심도 있었지만, 악명 높은 중국의 슬리핑 버스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무엇보다 장거리 야간 여행에서 화장실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다시는 중국의 공중 화장실을 가고 싶지 않았다. 가급적 화장실을 가지 않으려고 저녁을 거의 건너뛰다시피 하고, 물을 마시는 것도 자제하고 버스에 올랐다.


중국 슬리핑 버스는 내부에 3열 2층으로 침대가 배치되어 있다. 침대는 좁고 짧아서 키가 큰 사람은 거의 구겨지다시피 해서 가야 하니 고행길이 따로 없다. 전혀 위생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담요와, 꽉 들어찬 승객들에게서 나는 체취는 민감한 사람에게는 더구나 고행일 것이다. 계속 흔들리는 버스의 비좁고 불편한 침대에서 숙면을 취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밤새 눈을 붙이는 둥 마는 둥 하고, 버스는 깜깜한 새벽에 우리를 국경도시 허커우에 내려놓았다. 


중국 슬리핑 버스 내부 모습


버스를 내린 곳에서 국경까지는 가깝기에 걸어가면 된다. 그러나 국경 사무소는 새벽에 열지 않는다. 사무실이 업무를 시작하는 시간까지 길바닥에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문을 연 상점도 하나 없는 깜깜한 새벽에 밤새도록 비몽사몽 버스에 시달려 지친 몸을 편히 기대 쉴 곳이 없다. 동이 트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세관 근처 상점들이 하나 둘 문을 열기 시작한다. 오토바이들이 떼로 몰려들기 시작하고 우리에게 뭐라고 자꾸 말을 시키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굳게 닫힌 새벽의 허커우 국경


드디어 영어를 하는 젊은 중국인이 지나가다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자신의 가게가 바로 옆이라며 와서 커피 한잔 하고 화장실을 쓰라고 한다. 구세주가 따로 없다. 우리 부부가 신기한지 젊은 주인은 호기심에 차서 질문이 많다. 자신도 그렇게 여행을 다니는 게 꿈이라며 부럽다고 한다. 그러면서 중국인으로서의 자부심도 내비친다. 중국에서는 외국인과 내국인에게 똑같이 가격을 받는데, 건너편 베트남에서는 외국인에게 바가지를 씌운다고 한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중국도 관광지에서는 외국인들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일이 심심치 않게 있다. 그런 바가지도 어차피 여행에서 얻는 경험의 일부이고 치러야 할 애교스런 비용이다. 


동남아의 바가지는 정말로 애교 수준이어서 기껏해야 소심하게 몇백 원 혹은 몇천 원 정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페인 친구는 한국의 찜질방에 갔다가 기본요금 이상 나올 수 없는 뻔히 보이는 호텔까지 택시비로 10만 원의 바가지를 썼다. 한국의 바가지는 스케일이 크다.


더할 나위 없이 맛있는 모닝커피를 한잔 하고 잠깐이나마 앉아서 쉬면서 주인과 잡담을 하다 보니, 드디어 국경 문이 열리고 출국 수속이 시작되었다.


중국 허커우를 빠져나와 국경에 놓인 다리를 건너면 베트남 라오까이 출입국 사무소이다. 새벽부터 국경을 오가는 상인들로 국경은 붐빈다. 베트남 쪽에서 중국으로 바리바리 보따리를 짊어진 베트남 상인들이 줄을 섰다. 다리에 들어서자 베트남 삐끼가 벌써 따라붙는다. 아직 국경을 넘지도 않았는데... 베트남에 왔다는 것이 실감 난다. 중국 사람들이 다소 무뚝뚝한 편인데 비해 베트남 사람들은 동남아 특유의 친화력이 있다.


국경에 늘어선 상인들
뒷쪽의 아치가 베트남 쪽이다
다리를 건너 베트남이 보인다
국경을 넘는 상인들
드디어 베트남에 왔다


물론 그 중국 상점 주인 말대로 베트남에서는 바가지를 씌운다. 이 삐끼도 벌써 환전부터 어디 가서 하라고 종용하기 시작하고, 사파 가는 미니버스를 자신에게 구매하라고 붙잡고 놔주지를 않는다. 라오까이에서 사파까지 가는 미니버스 가격을 알고 왔기에 내가 바가지를 쓸 일은 없다고 생각했고 라오까이 역까지 가기도 귀찮아서, 적정 가격에 흥정을 마쳤다. 하지만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라오까이 역까지 가서 미니버스를 탔으면 대부분 사파를 가는 외국 관광객들로 금방 인원이 차서 출발하는데, 이곳 국경에서 타니 인원이 모두 찰 때까지 여기저기 사람을 모으느라 출발이 한참 늦었다. 더구나 대부분 현지인들이라 온갖 화물이 가득 실리는 통에 가뜩이나 좁은 미니버스가 터져버릴 듯하다. 


사파는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지 시절, 프랑스인들이 휴양지로 개발한 고산지대이다. 아름다운 풍광과 기후를 자랑하는 곳이다. 쿤밍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허커우에 새벽에 도착해서, 국경을 넘고, 미니버스를 다시 타고 구불구불 산을 올라 사파에 왔다. 미리 예약한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는 그대로 녹초가 되어 침대에 쓰러져버렸다. 역시 야간 버스는 체력 소모가 매우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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