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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le Ale Jan 10. 2018

패신저 Passengers

마케팅의 희생자

흥행에 참패한 영화는 대부분 합당한 이유가 있다. 넷플릭스에 올라온 패신저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흥행 참패한 것을 감안하고 아무런 기대 없이 킬링 타임용으로 보기 시작했다가, 의외로 재미있는 로맨스 영화를 만나게 되어 놀랍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마케팅의 포인트가 조금 더 정확했더라면, 그리고 조금 더 솔직했더라면, 훨씬 더 좋은 박스 오피스 성적을 거두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이 영화는 SF활극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로맨스이지만, 인간 본성에 대한 나름 진지한 질문도 던진다. 물론 블록버스터답게 화려한 특수효과와 거대한 우주선의 스케일이 놀랍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무대만 우주선일 뿐 두 남녀의 로맨스 물이라고 해야 더 적절할 영화를 마치 SF활극처럼 마케팅을 했다. 관객들이 당연히 기대와 어긋나는 내용에 실망했을 터이다.


새로운 행성의 식민지에서 새 삶을 꿈꾸며 우주선 아발론호에 탑승한 5천5백여 명의 승객들은 120년이 걸리는 장거리 우주여행을 위해 동면 상태로 여행을 하게 된다. 원인 불명의 이유로 불과 30년 만에 동면에서 홀로 깨어난 짐 프레스턴은 거대한 우주선에서 홀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다. 1년이 넘게 혼자 고독과 싸우던 짐은 결국 갈등 끝에 또 다른 승객인 오로라 레인을 깨운다. 


한번 동면에서 깨어나면 다시 동면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 90년이 더 걸릴 여정 동안 우주선에 갇혀 지내야 한다. 즉 우주선에서 생을 마감해야 하는 것이기에, 결국 짐은 고독을 이기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일생을 망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로라를 깨운다. 



짐이 느끼는 갈등은 흥미로운 윤리적 문제를 던진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행위를 저지르고도 과연 그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만일 나 자신이 짐과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다면 짐처럼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홀로 고독 속에서 죽을 수 있을까? 물론 영화는 이런 철학적 질문에 대해 깊이 숙고하지는 않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공식대로 흘러간다. 진부한 로맨스로 이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다.


엄밀하게 따지면 뻔한 로맨스물인데, 다만 그 로맨스의 무대를 약간 비틀어서 달랑 두 사람만 깨어 있는 거대 우주선으로 변주했다. 그리고 그런 세팅이 진부한 로맨스에 흥미를 불어넣어 상당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되었다. 다만 엄청난 제작비를 쏟아부었을 것이 틀림없는 우주선의 세팅은 과잉투자가 아닌가 싶다. 물론 그것은 제작자의 몫이니 관객이 걱정할 일은 아니다.


잠시 등장하고 죽어버리는 승무원 거스와 바텐더 역의 로봇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등장인물은 짐과 오로라 단 두 명이다. 나머지는 현란한 우주선과 특수효과로 채워진다. 그래서 상당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더불어 주인공 두 사람의 연기도 좋아서, 극장에서 대형 화면으로 봤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쉬운 점은 짐이 겪는 내면의 갈등과 오로라를 깨우는 결정이 조금 더 정당화되고 설득력 있게 다가왔었으면 하는 점이다. 짐이 텅 빈 우주선에 홀로 깨어나 겪는 고독이 훨씬 더 절절하게 묘사되었어야 했다. 제니퍼 로렌스가 분한 여주인공 오로라를 빨리 등장시키고 로맨스를 엮어가다 보니 그런 짐의 고뇌에 대한 묘사가 부족했다.


그럼에도 충분히 재미있는 로맨스 영화이다. 다만 이 영화를 SF 영화로 분류하기에는 망설여진다. 무대가 항성 간 우주선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딱히 SF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긴, 그렇게 엄밀하게 따진다면 특정 장르를 규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작업이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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