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le Ale Feb 01. 2018

컨택트

원제는 어라이벌 Arrival

원제인 어라이벌 Arrival이 컨택트라는 제목으로 바뀌어서 개봉했다. 따지고 보면 컨택트가 반드시 틀린 제목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원래 제목의 뉘앙스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컨택트는 외계인과의 접촉 내지는 만남의 분위기를 풍긴다면, 어라이벌은 미지의 존재가 나타났다는 사실 자체에 방점이 더 찍힌다고 하겠다. 제목이 영화의 성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적절한 작명에 많은 고심을 했겠지만, 이 경우에는 썩 잘된 작명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영화는 언어와 소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원작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소설에서 보다는 주제를 단순화시키고 포커스를 좁혔다. 소설에서 조금 더 깊게 다루고 있는 선형적 사고에 의한 세계관과 통시적 목적론적 존재 의식에 대한 철학적 내용은 생략하였고, 영화에서는 언어의 중요성과 그에 따른 소통의 문제에 집중한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12개의 거대한 쉘은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쉘이 나타난 지역의 국가를 중심으로 외계인과 소통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만, 명확하지 않은 메시지와 각 국가 간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인해 긴장이 고조된다.


글로벌한 위기의 중심에 언어학자 루이스가 있다. 그녀는 외계인의 언어를 해독하여 이들이 지구에 온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그리고 그녀가 드디어 외계인의 언어를 해석하게 되었을 때, 언어의 중요성이 극명하게 강조된다. 언어가 우리의 사고 체계를 결정한다는 언어 결정론은 극 중에서 루이스의 대사로 나오는데, 여기서는 그 이상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루이스가 외계 언어를 이해하게 되었을 때, 그녀는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게 된다. 외계인의 언어는 우리네 사고체계처럼 선형적 시간을 가진 체계가 아니라 비선형적이다. 따라서 그 언어를 이해하게 된 루이스는 비선형적 사고체계를 갖게 된다.



외계인이 지구에 온 목적이 바로 그것이다. 자신들의 언어를 알려주어서 루이스의 사고 체계가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지구는 먼 미래에 외계인을 구해주게 된다. 우리가 갖는 기억은 과거의 기억이지만, 외계인의 언어를 습득한 루이스는 미래의 기억을 갖게 된다. 그녀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정확하게 기억하게 되고, 영화 도입부에 나온 딸의 죽음은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미래에 발생할 일에 대한 기억이다. 루이스는 이제 자신과 함께 임무에 투입된 물리학자 이안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딸을 갖게 되고, 그 딸이 불치병으로 죽게 되리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된다.


미래에 대한 루이스의 기억은 영화 내내 삽입되는데, 관객은 이것이 과거의 기억인 줄 알고 보다가 결국 미래의 기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미래의 기억으로 인해 루이스는 국제적인 위기를 해결하게 된다. 언어가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아니 언어가 결국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을, 이렇게 극적인 과장으로 표현해냈다.


언어는 우리가 소통하는 방식뿐 아니라 루이스의 경우에는 세계관은 물론이고 모든 것을 바꾸어 버렸다. 그러니까 언어가 결국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언어 결정론의 끝을 보여주는 영화가 컨택트이다. 영화의 원작 소설은 테드 창의 "당신 인생 이야기 The Story of Your Life"이다. 


원작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는 경우와,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 원작 소설을 읽게 되는 경우, 두 가지 방식에는 상당한 차이가 발생한다. 소설과 영화는 매우 다른 미디어이고, 어느 미디어를 통해 접하게 되는가에 따라 인식의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마샬 맥루한이 짚었듯이, 미디어가 곧 메시지이다. 따라서 같은 내용을 어떤 미디어를 통해 접했느냐에 따라 인식의 차이가 발생한다. 같은 맥락으로 영화는 언어 자체가 우리의 인식을 결정한다고 말하고 있다. 언어도 소통을 위한 미디어의 일종으로 본다면 영화는 맥루한의 미디어 결정론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여러 다른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우선 옹의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를 떠올리게 하고, 이와 관련된 또 다른 영화 "화씨 541"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소통은 언제나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문제이고, 소통의 도구인 언어의 역할은 언제나 연구대상이다.


인공지능을 통한 번역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왔는데, 이 영화의 메시지에 의하면 인공지능에 의한 번역은 의미가 없다. 언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인식체계의 변화를 의미하기에, 인공지능 번역기에 의지한 의사소통은 결국 진정한 소통이 될 수 없다. 언어를 확실하게 습득해야 진정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는 사실이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패신저 Passenger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