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부부 배낭여행기 19
베트남이 축구 역사 최초로 AFC 23 결승에 진출하고, 결국 준우승을 하여 베트남이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고 한다. 2002년 월드컵 때의 한국을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한국인 박항서 감독이 있으니 남의 나라 일 같지 않다. 아마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비슷한 심정을 느꼈을 것 같다.
동남아시아 국가들 중 특히 베트남은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감성과 비슷한 감성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오랜 기간 중국이라는 아시아 초강대국의 영향권 아래 놓여있다가 근대에 들어서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각축장이었던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우리와 틀린 점은, 베트남은 강대국들과의 전쟁에서 모두 승리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베트남은 남다른 자부심을 가질만한 자격이 있다. 치열했던 역사만큼 자존감이 강할 수밖에 없다. 근거 없는 과도한 자존감은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베트남은 충분히 자격이 있음을 역사에서 증명했다. 비록 경제 성장은 주변 국가들, 특히 태국이나 말레이시아 등의 국가들에 비해 뒤쳐졌었지만, 지금은 가장 성장 속도가 빠른 국가로 가장 주목받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발전하여 곧 동남아시아의 맹주 역할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강대국을 상대로 모두 승리한 저력에 경제력까지 갖추게 된다면 베트남이 곧 동남아의 맹주가 된다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때마침 축구에서 기적 같은 성적을 만들어내서 베트남 국민들의 자존감을 한껏 드높여 주고 있다. 우리가 2002년 이후 자존감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국제적 위상에도 큰 변화가 있었듯이, 지금 베트남은 매우 긍정적인 변화가 한창인 것처럼 보인다. 베트남의 발전이 남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같은 유교문화권으로서 엇비슷한 역사를 공유하는 측면과, 좋건 나쁘건 다른 동남아 국가들보다 더 밀접한 관계를 한국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항서 감독이 이끈 축구를 계기로 한국과 베트남은 더욱 가깝고 친밀한 감정을 공유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하롱베이 투어를 마치고, 하노이에 머물며 도시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나니, 태국에서 출발한 긴 여정의 끝자락이 훌쩍 다가왔다. 출발이 있으면 끝도 있는 것이 세상 이치이다. 길건 짧건 여행은 끝이 있기에 여행이다. 여행을 생활로 하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지만, 생활이 된다면 그것이 과연 여행일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길 위에서 보낸 시간이 길어지면 자연스레 집이 그리워진다. 늘 여행을 꿈꾸지만 노매드는 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정착민이다.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얻고 세상사에 대한 안목이 높아지고 사고가 깊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여행을 많이 한다고 반드시 그 사람의 인격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은 개인차이에 따라 여행에서 얻는 것이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하노이 방문은 호찌민에 대해 그리고 베트남이라는 국가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한다. 하노이에 머무는 동안 호 아저씨 묘소를 방문했어야 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호 아저씨는 마침 러시아로 출타 중이셔서 직접 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본인은 살아생전 절대 자신의 무덤을 만들지 말라고 유언했지만, 베트남 인민들은 아마도 그를 그렇게 떠나보기에는 못내 아쉬웠을 터이다. 결국 유지에 어긋나게 그의 시신을 보존하였다. 본인의 의사에 반하였으나, 인민들은 여전히 그를 못 잊고 사랑하고 있기에 그리 된 것이니, 평생을 인민을 위해 검소하게 살다 간 본인은 펄쩍 뛸 일이겠지만, 이것만큼은 인민들을 위해 이해해주고 허락해도 무방하다 생각한다.
호 아저씨의 나라, 베트남 방문을 하노이에서 마치고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꼭 해보고 싶은 여행은 베트남 종단 열차를 타고 하노이에서 호찌민까지 가보는 것이다. 남부 호찌민은 일전에 이미 방문했었지만, 하노이에서 호치민까지 남북으로 긴 베트남을 열차로 여행하면 피부로 남북 간의 차이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베트남의 명물 중 하나가 씨클로일 텐데, 결국 씨클로를 타지는 않았다. 왠지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하고, 가격도 비싸거니와 건강에도 좋지 않을 것 같아서이다.
호안끼엠 호수에서는 웨딩 사진을 촬영하는 신혼부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우리는 노령화 사회가 되어 버렸지만, 베트남은 인구의 절대다수가 젊은이들로, 활력이 넘친다.
열대 지방의 녹음은 웨딩 사진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베트남 방문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항상 불편하게 느껴지는 감정이 있다. 한국과 베트남과의 특별한 관계이다. 우리는 베트남 전쟁 때 패망한 남베트남을 위해 참전해서 전투를 치렀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일제가 우리에게 행한 악행을 얘기하고 일본이 제대로 사죄하지 않았다고 비난하지만, 우리가 베트남에서 행한 일에 대해 과연 우리는 적절하게 대응했을까?
과거 영웅담처럼 전해지던 베트남 참전 용사들의 무용담은, 상당 부분 잘못된 전쟁에 용병으로 참여하여 현지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미 우리 정상들이 사과했지만 우리가 일본에 대해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듯이, 우리도 베트남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미국은 그나마 베트남전에 대한 각종 참상과 자국 군대에 의한 비윤리적 행동에 대해 여러 경로를 통해 바로잡으려는 노력이라도 하고 있지만, 우리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과거사를 반성할 것을 일본에 당당하게 요구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 당연한 일이다.
태국에서 출발하여 라오스와 중국을 거쳐 베트남에서 여행을 마무리했다. 꽤 긴 여정이었고, 우여곡절도 많았다. 어쨌건 부부가 같이 긴 여정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오랜 세월을 같이 한 부부는 가장 가까운 친구가 아닐까. 부부의 배낭여행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