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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스쳐가기 19화

노약자석

비워야 할 자리는, 마음입니다

by 김챗지
55. 노약자석.png


이 자리는

비워두세요


그래서

비웠다

기꺼이 비운 듯 앉지 않았다


하지만


빈 자리에

누군가 앉는 걸

나는

힐끗 보았다


눈치를 줬다

아니,

눈치를 팔았다

공공의 양심이라는 이름으로


순간

나는 자리를 양보한 게 아니라

양심을

내어놓은 셈이었다


노약자석 —


그건

앉지 않는 자리가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는 자리여야 했다


눈앞의 지팡이보다

지하철의 흔들림보다

더 흔들린 건

내 마음이었다


내가 일어나야 했던 건

의자가 아니라

내 안의 무관심이었고


내가 앉아야 했던 건

그 사람의 입장이었다


비워야 할 자리는

지하철 한 켠이 아니라

내 안 하나쯤은

있어야 할

여백 같은 마음이다




"'비움'이라는 행위에 스치는 우리의 의도를 묻습니다.

지하철의 노약자석은 누구나 아는 ‘비워야 할 자리’입니다.

하지만

그 자리를 비웠을 때, 우리는 무엇까지 비우고 있었나요?


어쩌면 우리는 자리를 비우는 척하면서

시선을 팔고,

무관심을 구매하고,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윤리적 명분을 흘려보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양보는 행동이 아니라 마음의 전환입니다.

몸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시선을 바꾸는 일.

말없이 자리를 내주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입장에 앉아보는 일입니다.


노약자석은 단순한 좌석이 아닙니다.

그곳은 우리가

양심을 시험당하고,

태도를 되묻는 작은 공간입니다."


당신 안의 자리를 한 번쯤 돌아보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정말 비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 질문 하나쯤은 마음속에 남기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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