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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스쳐가기 21화

텃세

낯선 곳에 마음이 먼저 도착했다

by 김챗지
61. 텃세.png


발끝보다

마음이 먼저 긴장했다

처음인 것은

언제나 공기부터 다르다


베란다에 널린 수건이

내가 스친 바람에

놀란 듯 흔들리고


엘리베이터 안

무표정한 인사와 함께

조용한 벽이 하나 생긴다


텃세는

화를 내는 대신

말없이 문을 닫는 일로부터 온다


너무 조용한 인사

짧게 닫히는 현관문

그 뒤의 한숨 같은 공기


낯섦은

그런 작은 틈 사이에서 자란다


그러다 문득

눈인사 하나가 먼저 다가왔고

누군가 문을

조금 더 오래 붙들었다


그 ‘별일 아닌 일’에

나는 오늘도

여기에 있어도 되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제야 알았다

텃세는

누군가의 마음이 아니라

내가 움츠렸던 마음의

모서리였다는 걸


이제

조금은 익숙해진 이 골목에서

나도 누군가의 처음을

조용히 받아줄 준비를 해본다




"처음이라는 건,

늘 발보다 마음이 먼저 멈춥니다.

한 발 내디딘 골목에서조차

공기가 다르다는 걸 먼저 느끼게 되지요.


누구도 나를 향해 차갑게 굴지 않았지만,

누구도 내게 다정히 말을 건네지도 않았기에

나는 조심스러워지고,

말 없이 작아집니다.


텃세는 꼭 누군가의 차가운 말에서 시작되는 게 아닙니다.

더 자주,

조용한 인사와 닫히는 문틈,

말 없는 거리의 표정 속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나’에게서 피어납니다.


우리는 모두

새로움에 서툴고, 낯섦 앞에 긴장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처음은,

결국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이 공간에 들어섰는가’에서

조용히 시작됩니다."


텃세는 타인의 벽만이 아닙니다.
아주 자주,
그건 나조차 몰랐던 내 안의 두려움이
천천히 만들어낸
투명한 벽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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