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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스쳐가기 22화

초보운전

누구나 처음엔, 방향 감각이 없다

by 김챗지
64. 초보운전.png


앞차가

방향지시등을 켠 채

한참을 망설인다


차선 하나 바꾸는 일이

저토록 어려운 걸까

나는 잠시

브레이크에 발을 얹는다


창문 너머

‘초보운전’ 스티커 하나

햇빛에 약간 일그러져 붙어 있다


저 사람은

길보다 사람을 더 의식하는구나

흐름을 방해할까

세상의 속도를 막을까

그게 더 겁나는 거겠지


사실은

우리 모두 그런 시절이 있었다

처음엔

가고 싶은 길보다

방향부터 잃는 게 먼저였다


그래도 결국은

조심조심 길을 틀고

서툰 속도로

자기만의 리듬을 찾아 나간다


나는 클랙슨 대신

조금 더 멀찍이

서두르지 않는다


익숙함은

누군가의 느림을

기다려준 시간 위에

세워지는 것이니까




"오늘, 앞차가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방향지시등은 계속 깜빡이는데

움직이지 않았죠.

누군가는 답답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경적을 울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저

그 차의 뒷유리에 붙은

‘초보운전’ 스티커를 보았습니다.


작은 문구 하나에

많은 게 담겨 있더군요.

아직 손에 익지 않은 두려움,

흐름을 막고 싶지 않은 조심성,

그리고 어쩌면

세상이 자신을 탓할까

불안한 마음까지.


문득 생각했습니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길보다 시선을 더 의식했고,

속도보다 맞는 방향을 잡기 위해

주춤거리던 때가.


우리는 능숙해지면서

종종 잊습니다.

처음엔 누구나

그 느린 한 걸음으로

자기만의 리듬을 찾아간다는 걸.


오늘도 어디선가

주저하는 이가 있다면

잠시만 기다려줄 수 있기를."


클랙슨보다 더 따뜻한 침묵,
그 기다림이 누군가에겐
세상으로 나아가는 첫 리듬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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